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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칼럼] 포기하기엔 아직 이르다.
[취업칼럼] 포기하기엔 아직 이르다.
  • 안시우
  • 승인 2006.09.26 11: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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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도 청년층 자살률이 2004년에 비해 15% 증가했고, 자살 이유의 절반이상은 ‘세상비관’이라고 한다. 삶에 대한 의욕과 열정으로 넘쳐나야 할 시기에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오히려 목숨을 끊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고도 경제 성장기를 지난 지금의 한국은 고용에 있어 예전만 못한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집 장만에 앞서 차를 먼저 살 정도로 막강한 소비성향을 보이는 요즘의 청년층들에게는 실업 등으로 인한 상실감은 중장년층에 비해 상대적으로 클 수밖에 없다. 그렇다 해도 그들의 삶에 대한 태도는 지나치게 비관적이고 소극적이다.

한 세대 전만해도 어렵고 힘들수록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애를 썼지만, 요즘의 젊은이들은 조금만 힘이 들면 죽을 생각부터 한다. 그들에게 장애나 어려움은 극복해야 되는 대상이 아닌 피해야만 하는 존재다. 그들은 한결같이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앞이 막막하다’는 말만 되뇌이면서 비난과 비판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한다.

돌이켜봤을 때 앞이 보이지 않고 사는 게 막막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던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 문제에서 자유로웠던 때도 자유로웠던 이도 없었다. 불확실한 미래는 삶을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공통으로 주어진 문제이기는 하지만, 우리를 다그칠 수 있는 필요한 스트레스이기도 하다. 미래가 확실하다면 누가 자기 계발을 하고, 누가 도전을 하겠는가?

자신의 상황이 제일 힘들고, 자신이 제일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생각이다. ‘요즘 애들 버릇없다’고 나무라시는 어른들 역시도 같은 꾸중을 들으며 성장했고, 제대한 예비역들은 자신의 군생활이 제일 힘들었다며 입을 모은다. 나를 통과하는 시간 중에 힘들지 않은 시간은 없다. 고통의 크기를 떠나 고통을 느끼는 그 순간에는 누구나 힘들다.

하지만, 정말로 앞이 보이지 않는 순간은 힘들다고 주저앉을 때이다. 주저앉는다고 해서 누구도 나를 대신해서 살아줄 수 없다. 어떻게 보면, 죽고 싶다는 건 새롭게 다시 살고 싶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러한 열망과 용기면 힘든 시간은 충분히 이겨내고도 남는다.

즐거워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기 때문에 즐거워지고, 슬퍼서 우는 것이 아니라 울기 때문에 슬퍼진다고 했다. 뇌는 가짜 웃음과 진짜 웃음을 구별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진짜 행복해진다. 고통과 불행에 대한 객관적인 기준은 없다. 내 행복은 내가 결정하는 것이다.

지금 비록 힘들지라도 망설이지 않고, 주저하지 말고, 재지 말고, 포기할 수 없는 그 한 가지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다면 먼 훗날 지금을 웃으며 얘기할 때가 반드시 온다. 그대 아직 젊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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