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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정책과 공산권 붕괴 예견한 앨빈 토플러 석학 타계
햇볕정책과 공산권 붕괴 예견한 앨빈 토플러 석학 타계
  • 박귀성 기자
  • 승인 2016.06.30 07: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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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빈 토플러, 창조경제 햇볕정책 기초 김대중의 멘토 서거

[한강타임즈 = 박귀성 기자] 인류와 사회의 미래 관련 많은 명저를 쏟아냈던 세계적인 미래학자이자 앨빈 토플러가 29일 서거(逝去)했다.

앨빈 토플러 서세(逝世) 부음은 앨빈 토플러의 부인이자 사상적 멘토였고 비즈니스 파트였던 하이디 토플러와 동업하던 ‘토플러 어소시에이츠(Toffler Associates)’가 30일 새벽(한국시간)가 공식적으로 밝혔다. 앨빈 토플러는 향년 87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앨빈 토플러는 피터 드러커와 톰 피터슨 등 현대에서 가장 존경받는 미래 학자 가운데 한명으로 전 세계 모든 정부와 기업 지도자들에겐 지대한 영향을 줬던 세계적인 석학이었다. 공식적인 발표에 의하면 “앨빈 토플러는 아내 하이디 토플러와 살던 집에서 지난 6월27일 월요일 저녁 사망했다. 아내와는 60년 이상을 함께했다.

'제3의 물결'과 '권력 이동' 등 세계적인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지난 27일 저녁 자택에서 서세했다. 사인을 별도로 전해지지 않았다. <사진 : 토플러 어소시에이츠>

앨빈 토플러는 ‘미래의 충격’이나 ‘제3의 물결’, ‘권력이동’ 등 미래를 내다보는 예리한 학술을 담은 저서를 통해 전 세계 정치 지도자들의 국가 지배와 다국적 기업 CEO의 경영비젼을 제시했으며, 우리 사회가 제조업 기반의 경제에서 지식과 데이터 위주의 사회로 이동해 가는 ‘육체노동에서 지식노동 시대로의 이동’을 예견했던 학자였다.

우리나라 김대중 전 대통령은 앨빈 토플러의 ‘남북한의 평화 통일을 위한 기초 이론’을 받아들여 훗날 ‘햇볕 정책’의 토대로 삼았다. 앨빈 토플러는 ‘김대중 평화통일론’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멘토였던 것이다.

중국의 자오쯔양 전 총리는 당시 중국의 괄목할만한 경제 성장을 주도하기 위한 경제 개혁 프로그램을 추진하기 위해 자신의 연설 속에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의 내용을 담아 인용하기도 했다. 중국인들은 앨빈 토플러의 이 저서를 “중국을 바꾸어 놓은 책”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구 소련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 또한 앨빈 토플러를 멘토로 삼았다. 앨빈 토플러는 구 소련에도 적지 않게 영향을 줬는데, 과거 1917년 러시아 공산 혁명 이후 소련에 첫 비정부, 비공산당 기구가 생겨날 당시 소련 지도자 미하일 고르바초프에 의해 1986년에 작은 앨빈 토플러 연구 모임이 만들어졌고, 오늘날의 러시아에는 40만명이 넘는 시민 단체로 발전했다.

특히, 세계적인 기업과 재벌 총수들은 하나같이 앨빈 토플러의 미래학 관련 저서들을 경영 지침서로 삼았다. 앨빈 토플러의 미래 경영 개념과 방법론을 사용한 경영지도자들은 한결 같이 앨빈의 작품을 극찬했다. 앨빈 토플러의 세계 최고 부자에 이름을 올렸던 멕시코의 통신재벌 카를로스 슬림도 사업상 토플러의 영향을 받았다.

토플러어소시에이츠의 최고경영자(CEO) 데보라 웨스트팰은 “처음으로 앨빈에게 고용된 사람으로서, 또 그의 박학과 업적을 발전시켜야 하는 책무를 가진 사람으로서, 토플러의 미래를 보는 안목과 우리 삶에 내재된 연결고리에 대한 이해에 대해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앨빈 토플러와 부인 하이디 토플러는 미래학자라기보다는 현대 산업혁명의 기수였다는 평가가 더 합당할만한 평가다. 1928년 미국 뉴욕에서 출생한 앨빈 토플러는 1949년 뉴욕대학에서 공부할 당시 아내 하이디를 만났다.

앨빈 토플러와 하이디는 학업을 계속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지만 사회적 운동에 대한 열망이 높았던 이들은 끝내 학업을 접고 미국 중서부 집방으로 터전을 옮긴다음 공장에 취직해 하이디는 알루미늄 주조 공장을 다녔으며, 노동조합 사무직 직원으로 사회 운동을 실철했고, 앨빈 토플러는 기계 수리공 겸 용접공으로 5년간을 일했다.

현장 직공 생활을 영위하는 동안 앨빈 토플러와 하이디 토플러는 성가(成家)했고, 이런 현장 노동 생활을 통해 공업화된 대량 생산의 현장을 직접 체험했으며 이에 이론을 더한 사회학 정리는 훗날 이들의 미래학 저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물론 앨빈 토플러와 하이디 트플러는 이때부터 본격적인 사회 활동가로서, 인생의 동반자로서의 길을 함께하게 된다.

앨빈 토플러와 하이디는 이때의 현장 노동 경험을 살려, 앨빈 토플러는 노동전문 기자로 워싱턴 지국에서 활약했고, 펜실베이니아의 일간지 특파원으로 3년간 미국 의회와 백악관을 드나들기도 했다. 하이디는 당시 비즈니스와 행동과학을 중심으로 한 전문 도서관 사서로 근무하며 미래학을 완성하는 지식적 토대를 얻었다.

앨빈 토플러가 ‘넥스트 소사이어티 관련 미래학 시리즈 집필’에 들어간 것은 1960년대였던 이때부터다. 백악관 담당 정치 노동문제 기자로 일하다 비즈니스 분야로 활동의 터전을 넓힌 경험에 ‘포춘’의 경력이 가해지자 그의 미래학이 날개를 달기 시작한 것이다.

앨빈 토플러는 이런 노동과 정치부 기자 경력을 인정받아 미국의 저명한 경제지 ‘포춘’으로 옮겨 뉴욕에서 노동전문 칼럼니스트가 된다. 이후 앨빈 토플러는 세계적인 컴퓨터 업체 IBM에 들어서면서 그의 ‘미래학 이론’은 빛을 발하게 된다.

앨빈 토플러는 IBM에서 컴퓨터가 사회와 조직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는 업무를 하청 받았고 컴퓨터 및 인공지능 개발자들과도 학술적 교감을 나누게 됐다. 이제 그의 관심사는 디지털 혁명, 커뮤니케이션 혁명, 조직 혁명 등 훗날 21세기 군사기술, 병기와 기술 증식, 자본주의 증대로 분야와 범위를 광범위하게 넓혀졌다.

앨빈 토플러가 지난 1964년에 발간한 ‘문화의 소비자’는 그의 날카로운 통찰력을 세상에서 인정받는 계기가 됐으며 이후 ‘미래의 충격’으로 그는 자신의 미래학 이론을 굳건히 하게 된다. 이후 10년 간격으로 발간한 ‘제3의 물결’과 ‘권력 이동’은 앨빈 토플러의 ‘미래학 이론’을 절정에 이르게 한다.

앨빈 토플러의 사망 소식을 전한 ‘토플러 어소시에이츠’는 지난 1996년에 비즈니스 컨설턴트인 톰 존슨과 그의 부인 하이디가 함께한 컨설팅 업체이다.

그의 아내 하이디 토플러 역시 작가이자 미래학자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그녀는 현재 미국 국방대학교 교수, 유엔 여성개발기금 미국 위원회 공동의장을 맡고 있으며, 앨빈 토플러와 하이디 부부는 지난 2004년 출간한 ‘불황을 넘어서’ 외에 다수의 저서를 공동으로 발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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