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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구 “새누리당 파괴의 주범이 나라고?” 분기탱천
이한구 “새누리당 파괴의 주범이 나라고?” 분기탱천
  • 박귀성 기자
  • 승인 2017.01.20 13: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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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구 오랜만에 언론에 등장 “김무성 때문이었다”

[한강타임즈 = 박귀성 기자] 새누리당 공천학살 사건으로 총선에서 패배했다는 총선 백서에 중심인물로 지목됐던 이한구 전 의원이 총선과 함께 사라졌다 언론에 재등장했다. 이한구 전 의원의 재등장을 놓고 여의도 정가는 의견이 분분하다. 이한구 전 의원은 언론에서 ‘공천 학살’로 새누리당을 파멸로 이끈 주인공으로 보는 시각에 대해 불쾌한 심경을 드러냈다.

이한구 전 의원은 새누리당 인명진 비상대책위원회에서 꾸려진 중앙윤리위원회가 지난해 4.13 총선의 공천관리위원장을 맡았던 이한구 전 의원에 대해 가장 수위 높은 징계인 제명 결정을 내리면서 이한구 전 의원이 언론에 재등장하게 됐다. 전직 공천위원장을 제명한 것은 우리나라 정당사에서 유례없는 일로, 이한구 전 의원이 처음이다.

이한구 전 의원이 19일 당이 제명 결정을 내린데 대해 불쾌한 심경을 토로하며 당 지도부를 맹렬히 비난하면서 탈당을 선언했다.

이한구 전 의원이 지난 4.13총선에서 당내 공천위원장직을 맡으면서 최경환 의원을 중심으로한 친박계와 김무성 전 대표를 중심으로 한 비박계의 당내 갈등은 임계점에 이르렀고, 이한구 위원장의 지휘아래 비박계 인사들이 줄줄이 공천과정에서 배제됐다. 이를 이른바 ‘이한구 공천 학살’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이한구 전 의원은 이에 대해 인정하지 않는 모양새다.

이한구 전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 가정교사’와 ‘미스터 쓴소리’라는 별명을 가졌고, 또한 이한구 전 의원은 전형적인 TK 성골 출신의 정치인으로 알려져 있다. 1945년 경북 경주에서 태어나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고, 1969년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젊은 나이에 재무부 외환자금과장과 청와대 파견 등 요직을 거치면서 엘리트 관료의 전도유망한 길을 걸었다.

지난 1980년 신군부 정두환 노태우 내란범들이 권력을 찬탈한 이후 해직됐는데, 당시 이한구 전 의원이 젊은 사람이 출세가 너무 빨라 인사 질서를 어지럽혔다는 게 그 이유였지만, 실제로는 동서인 김용환 차관이 김종필 측근이었던 것이 원인이었다.

그 후 이한구 전 의원은 김우중 당시 대우 회장과의 인연으로 대우경제연구소에서 대표이사까지 맡았다. 정치에 입문한 것은 지난 2000년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총재의 권유 때문이었다. 당의 경제통이 돼서 16대부터 19대까지 내리 4선 의원이 됐고 대선 전후였던 2012년부터 2013년까지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맡기도 했다.

이런 화려한 경력을 갖고 있던 이한구 전 의원은 지난해 20대 총선을 앞두고 지역구 불출마를 선언했고, 당은 공천관리위원장을 맡겼다. 이미 이때부터 일각에서는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가 뒤에서 공천에 개입해 좌지우지 하고 있다는 설이 나오기 시작했다.

당시 당을 이끌며 책임지고 있던 김무성 대표는 일관되게 상향식 공천 원칙을 고수하면서 친박계의 공천 독식을 견제했지만 이한구 전 의원이 친박계의 전력 지원 끝에 공천관리위원장이 됐고, 이는 친박계의 전략 공천을 막으려는 김무성 대표를 견제하려는 것이었다.

이한구 전 의원의 공천 칼날을 매서웠다. 김무성계나 유승민계 의원들은 가차없이 낙천의 낙인을 찍어댔고, 유승민 의원에게는 공천 마감일 마감시간 1시간 전까지 공천 결과를 발표하지 않아 유천시키려다, 끝내 유승민 의원이 자진 탈당의 선택을 할 수 밖에 없게 만들었다. 언론은 당시 새누리당 공천위원회 상황을 거의 생중게를 하다시피 했고, 국민들은 종일토록 이런 모습을 지켜봤다. 하지만 당시에서 이한구 전 의원은 오히려 어쩔 수 없는 탈당을 선택 한 유승민 의원의 뒤통수에 대고 모질고 야멸찬 저주를 퍼붓기도 했다. 국민들은 이런 새누리당 공천 과정을 올곧게 지켜보면서 새누리당에 대한 애착을 버리게 됐고, 이는 끝내 4.13총선 참패와 당의 파탄이라는 결과를 가져오게 됐다.

이런 공천 학살에 대해 이한구 전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 결정은 사무총장, 부총장들이 모두 참여한 가운데 만장일치로 결정된 것”이라면서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지난 4.13총선 공천은 박근혜 대통령의 힘을 업은 친박계와 이한구 위원장의 뜻대로 진행됐고 유승민 의원을 비롯한 적지 않은 비박계 인사들이 공천 결과를 비난하며 당을 떠났다.

이한구 전 위원장은 당시 유승민 의원을 원색적으로 비판했다. 유승민 의원이 지난 3월23일 무소속 출마를 선언하면서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민권력을 천명한 우리 헌법 1조 2항입니다. 오늘 저는 헌법에 의지한 채 저의 오랜 정든 집을 잠시 떠나려 합니다. 그리고 정의를 위해 출마하겠습니다”고 선언했다.

이한구 당시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장은 이튿날인 24일에 “(유승민 의원은) 우리 당에 입당한 이래 꽃신을 신고 꽃길만을 걸어왔다. (이제) 우리 당을 모욕하고 침을 뱉으며 자기 정치를 위해 떠난 것”이라고 맹렬히 비난했다.

4.13총선의 꽃은 결국 김무성 전 대표의 “옥새를 갖고 튀어라”였다. 이한구 위원장의 공천 횡포를 막다막다 친박계의 실력행사로 한계에 부딪히자 김무성 대표는 공천장에 찍을 당대표 도장과 당무인장을 가지고 지역구인 부산으로 내려가 잠적했다. 이른바 ‘옥새 파동’이 벌어진 것이다.

이미 이때 이미 새누리당은 민심을 완전히 잃고,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원성은 전국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결국 총선은 볼 것도 없이 참패했다. 이한구를 앞세운 친박계의 공천 학살은 친박계로 봐서는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결과는 총선 참패와 돌아선 민심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졌다.

이렇게 새누리당의 오만과 독선, 불통의 전횡은 그칠 줄을 몰랐고, 민심을 읽지 못하는 새누리당의 내리막길은 분당과 분열, 청와대 최순실 게이트까지 이어졌고 이한구 전 의원은 현재 몰락의 일변으로 내닫고 잇는 새누리당 ‘친박계 전횡의 표본’이 돼어 17년 몸담았던 당에서 결국 제명이라는 수순으로 제거되고 말았다. 하지만, 지난 4.13 총선 직구 모습을 감췄던 이한구 전 의원은 지난 19일 모처럼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자신의 제명을 결정한 당 지도부를 맹렬히 비난하며 탈당을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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