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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장철영 "노무현, 우리가 간절히 기다리는 진짜 대통령 모습 아닐까요."
[인터뷰]장철영 "노무현, 우리가 간절히 기다리는 진짜 대통령 모습 아닐까요."
  • 안병욱 기자
  • 승인 2017.02.08 07: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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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사 장철영

[한강타임즈]"마음을 나눌 사람과 만나는 것도, 이별하는 것도 모두 운명입니다. 오랜 헤어짐 뒤에 다시 마주한 운명이 아프고, 눈물겹더라도 희망을 품을 수 있기에 소중합니다."

아무렇게나 넘긴 헝클어진 곱슬머리와 부리부리한 눈빛을 지닌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전속 사진사 장철영(45)씨.

지난 23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한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더는 대통령 전속 사진사가 아니었다. 다시는 마주하거나 다가갈 수 없는 피사체를 그리워하며 왈칵 눈물을 쏟아내는 영락없는 '울보'였다. 인터뷰 내내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누군가 그러더라고요. 삼년상을 치르면 다 잊을 수 있다고요. 근데 아무리 잊으려고 노력해 봐도 더 선명해지더라고요. 차라리 이럴 바에 가슴 깊이 새기자고 결심했어요."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를 출입하던 사진기자였던 장씨는 청와대 부속실 전속 사진사로 발탁됐다. 이후 노 전 대통령 퇴임까지 4년여 동안 50만 컷 넘게 대통령의 모습을 가감 없이 카메라에 담았다.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후회와 안타까움으로 7년간 인고의 세월을 보낸 그는 최근 대통령에게 전하지 못한 이야기를 담은 52편의 편지와 사진을 엮어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이상)'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했다.

그가 이번에 공개한 사진에는 노 전 대통령과의 아련한 추억이, 담담히 풀어낸 글자에는 그리움이 아로새겨져 있다. 노 전 대통령과 맺은 운명의 무게를 실제로 가늠하는 것은 어렵기에 어림짐작으로 추산할 뿐이다.

그는 지난 2005년 '대통령의 다양한 모습을 기록하고 싶다'며 청와대 부속실에 제안서를 올렸다. 대통령의 공식 일정 외에 자유롭게 일상적인 모습을 담고 싶다던 그의 제안은 당시로는 파격적이었다.

"언론에서 보여주는 정형화한 대통령의 모습이 아닌 인간적이고, 서민적인 모습을 기록하고 싶었어요. 조심스러웠지만, 그 기록이 하나둘 모이면 역사가 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의 제안서를 받은 부속실에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장고 끝에 결정을 못 내린 부속실은 공을 대통령에게 넘겼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 전속 사진사 장철영 씨가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장씨는 노무현 대통령의 미공개 사진집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를 출간했다

그는 "괜한 일을 했나 싶은 생각에 조마조마했지만, 하고 싶은 일이고 꼭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 제안서를 올리게 됐다"면서 "기록이 역사가 된다고 믿었던 대통령께서 흔쾌히 허락하셨다는 말을 전해 듣고 너무 기뻤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후 경호실과 각 부처에는 '장철영이 사진 찍는 것을 방해하지 말라'는 공식 지시가 내려졌다. 덕분에 그는 흔히 언론에 보도되는 '기념사진' 대신 대통령의 소탈하고, 진솔한 모습까지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호텔에서 양치질하는 모습을 비롯해 소파에 누워 잠을 청하는 모습, 청와대 경내에서 손녀와 자전거 타는 모습, 발가락 양말을 즐겨 신는 모습, 공군 1호기에서 라면 먹는 모습, 해외 정상들과 전화 통화하는 모습 등 찰나의 순간을 담은 사진은 그렇게 역사가 됐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대통령의 진솔한 모습들은 그가 있었기에 비로소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보통 정치인들이라면 기록을 남기면 훗날 역이용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들 꺼리는데, 노 대통령께서는 잘하든 못하든 모두 기록으로 남겨야 하고, 그것이 역사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자신의 사생활까지도 노출되는데 흔쾌히 허락해주셨어요."
그의 기억에는 노 전 대통령은 사진 찍히는 걸 썩 좋아하지 않았지만, 카메라를 의식하지도 않았다. 노 전 대통령은 그에게 단 한 번도 '자신이 어떻게 찍혔는지 사진을 보여달라'고 하지 않았단다.

그는 호기심이 많고 궁금한 것은 꼭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노 전 대통령과의 일화를 풀어냈다.

"어느 날 사진 촬영을 하는데 대통령께서 셔터 소리가 분명 두 번 났는데 플래시(스트로보)는 왜 한 번밖에 터지지 않았냐고 질문하셨던 적이 있었어요. 전날 술을 잔뜩 먹어서 충전하는 걸 깜빡했는데, 그걸 놓치지 않고 물어보셨죠.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아찔해요."

대통령 전속 사진사라는 직책은 그리 쉬운 것만은 아니었다. 대통령과 항상 가까이 있어야 하는 까닭에 개인 생활은 엄두도 못 냈다.

고 노무현 대통령 전속 사진사 장철영 씨가 촬영한 2007년 1월 9일 청와대 본관 소집무실에서 의전비서관, 연설기록비서관 등과 회의하는 모습. (사진=장철영 제공)

그는 "오죽했으면 대통령 퇴임 전까지 대구에 계신 아버지가 서울까지 올라오셔서 집안 제사를 지냈다"며 "대통령 전속 사진사의 삶은 언제 어떻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어 긴장의 연속이었고, 잇몸이 주저앉을 정도로 고단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집에서는 아내와 아이들을 챙겨주지 못한 나쁜 남편이자 아빠였다"면서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선거 캠프에서 일할 때 아내가 문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절대 청와대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내용의 각서를 내밀기도 했다"며 멋쩍은 웃음을 보였다.

그는 노 전 대통령 서거 당시를 묻는 말에 단박에 대답하지 못했다.

긴 생각에 잠긴 듯 한참을 망설이다 "지키지 못해 죄송한 마음뿐"이라고 운을 뗀 뒤 "도무지 믿기지 않는 비보(悲報)에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이 없었고, 한달음에 봉하마을로 내려가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답했다.

애써 묻어뒀던 기억을 끄집어내는 것이 고역이기 때문일까. 대통령을 향한 그리움일까. 어느새 그의 눈가가 붉어졌다.

그는 무거운 표정으로 켜켜이 묻어놨던 얘기를 꺼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갑작스러운 대통령 서거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어요. 사진을 진작 보여드리지 못한 것이 너무 죄송스러웠어요. 무엇보다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그는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고, 1년 가까이 사진 인수·인계 때문에 청와대에 남게 됐다. 당시 그에게 '변절자'라는 곱지 않은 시선이 꽂혔다. 그때도 노 전 대통령은 변함없이 그의 선택을 지지했다.

장씨는 "당시 봉하마을에 함께 내려가지 않기로 하자 주위에서 싸늘한 시선을 느껴질 정도였다"며 "훗날 대통령께서 저에 대해 청와대에 남아서 할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니 더 욕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눈물을 펑펑 쏟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는 노 전 대통령과 봉하마을로 내려가 다시 사진을 찍겠다고 한 약속을 끝내 지키지 못했다.

"대통령과 약속을 지키지도 못하고 지켜드리지도 못해 한참을 고민하고, 망설이다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사진과 끝내 전하지 못한 마음을 전하기 위해 책을 출간했어요."
그동안 아무도 본 적 없는 노 전 대통령의 미공개 사진은 이렇게 세상에 공개됐다.

그는 "찰나의 순간에도 대통령의 진정성을 카메라에 담는 것이 제 운명이었다"며 "꾸밈이나 위선이 없는 노 대통령의 소탈한 모습과 아래를 향한 대화와 소통, 배려야말로 대통령의 진정성"이라고 강조했다. 이것이 그가 생각하는 '진짜 사진'이자 '역사'다.

"색안경 끼고 노 대통령을 바라보던 분들과 대통령의 권위를 망가뜨렸다고 평가하는 분들이 사진을 보고 그분의 진정성을 알아줬으면 해요. 또 노 대통령을 사랑했던 분들은 추억을 함께 나눴으면 좋겠어요."

그와의 인터뷰는 예상보다 훨씬 길어졌다. 어떤 대화는 끊어질 듯 계속 이어졌다. 한정된 시간이 아쉬울 정도로 많은 얘기를 쏟아냈다. 그도 그럴 것이 대통령 전속 사진사로 활약했던 그때의 그리움과 목마름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희석되지 않았을 터.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

대통령 전속 사진사로 더 말할 수 없는 그 한 마디가 끝내 가슴을 울렸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이렇게 말했다.

고 노무현 대통령 전속 사진사 장철영 씨가 촬영한 2007년 9월 13일 청와대에서 옆자리에 손녀를 태우고 전기 카트를 직접 운전하는 대통령의 모습. (사진=장철영 제공)

"손녀를 자전거에 태워 청와대 앞마당을 달리는 대통령의 뒷모습 사진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손녀가 엉덩이 아플까 봐 수건을 깔아주셨어요. 이 모습이 우리가 간절히 기다리는 진짜 대통령의 모습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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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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