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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보이스 피싱에 무너진 자존심
[기고] 보이스 피싱에 무너진 자존심
  • 김충일 경감
  • 승인 2017.03.31 16: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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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타임즈] 형사 부서에서 10년 넘게 근무하다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를 담당하는 지능팀으로 발령 받은 지 어느덧 두 달이 넘어 간다. 형사부서 근무 당시 살인·강도·마약·절도 등 흔히 말하는 강력범을 상대하면서 “세상에 이렇게 나쁜 놈은 더 이 상 없을 거야, 이놈들은 암적 존재로 반드시 도려내야 돼”라며 숱하게 다짐 했지만 선악의 굳은 사고는 보이스피싱을 담당하면서 많이 변했다.

보이스피싱 피해자들이 이틀에 한 번 꼴로 진정서를 들고 지능팀 사무실을 방문한다.

대구동부경찰서 지능팀장 경감 김충일

30대 초반의 법대 출신 여성은 검찰 수사관을 사칭한 자로부터 계좌가 범죄에 연루 되었으니 돈을 안전한 계좌로 옮겨 라는 말을 믿고 500만원을 이체하고 가족으로 부터는 모욕적 소리를 들어가며 “내가 너무 바보예요”라며 서럽게 우는 모습, 제2금융권으로부터 1,400여만원을 빌려 쓴 40대 초반의 직장 여성은 대출한 금액만 갚으면 신용 등급을 올려 훨씬 싼 이자로 대환 대출가능하다는 말을 믿고 지인으로부터 2,000만원을 빌려 범인이 불러 준 여러 개의 계좌로 분산 이체하고 어렵게 살아가는 데 왜 이런 악재만 겹쳐야 하는지 한탄 하던 모습 등 피해를 입은 사연도 각양각색이고 쳐다보는 나의 가슴도 같이 미어지는 게 보통의 일이 돼 버렸다.

문제는 전화기 속 그 놈 목소리의 주인공을 잡았다고 피해자에게 말씀드려야 수사관으로서 체면이 서는데 겨우 통장 모집책, 현금 인출책, 통장 양도자 등 피라미들만 검거한다는 것이다. 주범은 이래 저래서 검거를 못했다는 핑계를 대는 내 자신이 한 없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범인을 못 잡는다면 예방을 위한 맞춤형 홍보라도 센스 있게 해야 하는데 그것도 여의치 않다. 대출 빙자 사기는 제2금융권, 고 이율 고객들이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많으므로 대출 실행 시부터 “이자율을 낮춰 주겠다고 돈을 요구하는 전화는 100% 사기입니다”라는 예방 안내문을 드리고 싶은데 대출 실행자 정보 접근조차 불가능하다. 차라리 지진 재난 안내 문자처럼 대국민 상대 일정한 시간에 예방 문자라도 넣고 싶은 마음은 욕심일까. 무리가 아닌 것이 보이스피싱 피해자의 심리는 재난 피해자의 심리 못잖으므로 국가적 차원에서 심리회복지원센터 개설도 생각할 때가 아닌가 싶다.

능력을 한탄하다 답답할 땐 ”어이, 총각 수사관! 피라미들만 잡아서 되겠나, 그 놈 목소리 주인공 좀 잡아 봐”, “저는 능력 없으니 팀장님이 좀 잡던지 수사 힌트라도 주세요” 10년 넘게 강력범을 잡던 노련한 형사팀장의 자존심은 보이스피싱 때문에 처참히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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