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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선택 대전시장, 그는 어떤 인물이었나?
권선택 대전시장, 그는 어떤 인물이었나?
  • 박귀성 기자
  • 승인 2017.11.15 11: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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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선택 대전시장 ‘아침동행’에 발목잡혔나?

[한강타임즈 = 박귀성 기자] 권선택 대전시장에 대해 국민의당이 일찌기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우연의 일치일까? 권선택 대전시장이 지난 14일 악몽같은 날을 맞았다.

권선택 대전시장은 실날같은 희망을 걸었지만, 권선택 시장 기소 사건에 대해 법의 잣대는 냉엄했다. 권선택 시장이 새정치민주연합 야당 시절엔 중앙당 차원에서 권선택 시장 사건에 대해 ‘야당 탄압’을 이유로 지원 사격도 했고, 한편으로 권선택 시장은 중앙 정치인이 아닌 일개 지자체장임에도 불구하고 여의도 정치권의 다른당으로부터 공격을 받기도 했다.

먼저, 권선택 대전시장 관련 대법원이 유죄를 인정한 원심을 그대로 인용하고 권선택 시장에 대한 형량을 확정했다. 결국 권선택 시장은 이날 확정과 동시에 시장직을 상실했다. 권선택 대전시장 반년여 남겨둔 시점이다.

권선택 대전시장이 14일 오전 대법원으로부터 유죄 징역형을 확정받고 시장직을 상실했다. 권선택 대전시장은 수건의 혐의에 대해 대부분 무죄를 받았지만, 결국 일부 유죄가 성립되면서 격추됐다. 권선택 대전시장의 향후 거취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권선택 시장에 대한 우려는 지난 5.9대선 전 국민의당에서 튀어 나왔다. 당시 국민의당 김세환 부대변인은 지난 3월 5일 권선택 시장에 대해 “‘권선택과 문재인의 비지니스 동행’을 우려한다”는 제목으로 논평을 내고 “지난 3월 4일 대전에서 열린 ‘권선택 시장과의 아침동행’이 ‘권선택과 문재인의 비지니스 동행’으로 변질된 것이 아니냐는 여론이 일고 있다”고 권선택 시장을 문제 삼았다.
 
김세환 대변인은 이어 권선택 시장에 대해 “시민의 자발적 참여, 사전신청으로 운영해온 ‘아침동행’에 예외적으로 관변단체가 대거 동원된 점, 문 전 대표가 대법원 판결을 앞둔 권선택 시장에 대해 노골적으로 지지 응원 메세지를 보낸 점은 의혹이 확신이 되기에 충분하다”고 권선택 시장을 직격했다.
 
김세환 대변인은 나아가 “권선택 시장이 대선 후보에게 잘 보여 죄를 면하고자 한다면 또 다른 국정농단의 시작과 무엇이 다른가. 권선택 시장의 자중을 촉구한다”면서 “문재인 전 대표는 광장에서는 민주주의를 목놓아 부르짖고 표 앞에서는 법질서보다 패권을 옹호하는 국민기만정치를 중단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즉, 문재인 대선 후보와 권선택 대전시장의 동행에 대해 엄중 경고를 했던 거다.
 
김세환 대변인은 그러면서 “권선택 시장과 문 전 대표의 비즈니스에 대전 시민을 들러리 세우지 않도록 정치적 양심을 기대해본다”고 권선택 시장과 문재인 대선 후보를 향해 강력히 경고했다.
 
권선택 대전시장에 대해 네티즌들은 14일 오전 권선택 대전시장 대법원 판결이 있은 후 권선택 시장에게 관심을 집중했다. 권선택 대전시장은 1955년 대전시 중구 목달동에서 태어났다. 대전 토박이라고 할 수 있다. 권선택 시장의 목달동은 당시에는 대전시 내에서도 겨우 몇 가구만이 모여 농사를 짓고 사는 한촌이었다. 

권선택 시장은 1967년 대전 산서초등학교와 1971년 충남중학교, 1974년엔 대전고등학교를 거쳐 1978년엔 성균관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권선택 대전시장이 그렇다고 해서 승승장구의 엘리트코스를 밟은 것은 아니다. 권선택 시장은 피가 끊는 사춘기 시절 대전중학교 낙방과 서울대 불합격이라는 고배를 마셨다. 

권선택 시장이 대학에 재학중이던 만 21살의 나이에 행정고시에 수석으로 합격을 하고 대학 졸업과 동시에 내무부 공무원을 선택해 지방 행정기관 근무를 지원했다. 권선택 시장으로선 당시 경제기획원이 인기순위 1위였고 행시 수석은 이곳으로 가는 것이 당연했지만 충남도청이 첫 근무지가 됐다. 권선택 시장이 행정 경험을 풍부하게 쌓을 수 있었던 이유다.

권선택 시장은 또한 1978년 만 22살에 풋내기 지방 공무원을 시작해 내무부 기획관리실에서 근무를 하고 대통령 인사비서관을 지냈다. 이어 내무부 근무를 거쳐 1995년에 대전시 기획실장으로 발령을 받으며 대전으로 돌아왔다. 권선택 시장은 1999년에는 정부부시장과 행정부시장을 지냈고 2002년 행정자치부 자치행정국장, 2003년 청와대 인사비서관을 끝으로 공직을 마쳤다. 권선택 시장의 이런 경력이 바로 전형적인 행정관료임을 증명하는 대목이다.

권선택 시장은 그후 정계에 진출했다. 지난 2004년에 권선택 시장은 열린우리당으로 17대와 18대 국회의원에 당선돼 고향인 대전 중구 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권선택 시장은 지금도 그렇지만 어릴 적부터 작은 키로 ‘키는 작아도 남의 앞에 서는 아이’였지만 손재주가 좋은 편이어서 또래 아이들을 위해 썰매를 만든다거나 나무를 깎아 기타를 만들기도 하는 등 친구들의 고민을 해결해 주는 해결사이자, 마을에선 A/S기사 등 주변의 어려운 일을 풀어주는 것을 많이 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권선택 시장은 이때부터 고향 대전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게 된 것으로 보인다.

권선택 시장 집안은 보문산 뒤쪽 안동 권 씨 집성촌인 중구 목달동에서 400여년을 살았다. 권선택 시장은 3남4녀의 장남이며 할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권선택 시장에게 할머니는 학자이자, 농사꾼이었고 의사였다. 권선택 시장은 오늘날까지도 할머니의 글 읽던 소리가 귓가에 남아 있다고 한다. 

권선택 시장 부친은 자식들에겐 근검절약을 실천하시면서도 이웃에 어려운 일이 있으면 발 벗고 나섰고 어려운 이웃울 그냥보아 넘기지 못하는 성품이었다. 권선택 시장 부친은 보릿고개땐 이웃들에게 조건 없이 곡식을 내주기도 했고 인근 마을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아버지로부터 크고 작은 도움을 받았고 우리 권선택 시장의 집은 자연스럽게 마을 사람들의 고민거리를 해결하는 장소가 됐다.

권선택 시장은 행정고시에 수석으로 합격했다. 70년대 대학가는 독재정권에 맞서 조용한 날이 없었고 권선택 시장이 대학에 진학한 1974년에는 민청학련사건이 발생해서 학교는 하루가 멀다 하고 휴교를 하는 등 지금과는 다른 암울한 시기였다. 

당시 권선택 시장은 시위가 있으며 맨 앞에 나서지는 못했지만 돌을 깨 나르는 일을 열심히 하기도 했다고 회고한다.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시위가 없는 날은 시대의 아픔과 좌절을 달래기 위해 폐쇄된 강의실 대신 학교 술집으로 출석하는 날이 더 많았고, 그렇게 무기력과 혼돈 속에 1학년을 보내고 2학년이 되면서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과 깡촌에서 어렵게 서울로 유학을 보낸 부모님 생각에 이렇게 대학생활을 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이 들어 권선택 시장은 친구 중 하나가 고시책을 열심히 보고 있는 것에 깨달아 그때 ‘고시’에 대해 독서삼매경에 들었다.

권선택 시장은 행정고시 수석 합격 한 후 주변인은 당시 인기 있고 힘 있는 경제기획원이나 재무부에 갈 거라고 생각했지만 권선택 시장은 내무부를 선택했다. 당시 내무부는 초임 사무관을 지방으로 배치하는 것이 관례여서 인기가 없었다. 하지만 권선택 시장은 낮은 자세로 상경하애와 멸사봉공의 정신으로 충남도청 서무과에서 충남도청 문화계장과 기획계장, 운수과장 등을 거쳐 내무부 지방과장, 대전시 기획관, 정무부시장, 행정부시장, 내무부 자치행정국장, 청와대 인사비서관 등을 두루 거쳐 정무부시장에서 행정부시장까지를 섭렵했다.

훗날 권선택 시장은 청와대로 출근하라는 인사명령을 받고 한참 동안을 “아무리 생각해도 왜 나를?”이라며 청와대의 낙점을 이해하지 못했다던 권선택 시장이었다.

권선택 시장은 그후 공직을 내려놓고 정치에 입문하고 지난 17대와 18대 국회에서 활약하다 지방선거에서 대전시장에 내리 당선됐지만 14일 오전 대법원은 권선택 시장의 유죄를 인정한 원심을 그대로 인용하면서 권선택 시장의 징역형이 확정돼 시장직 상실했다. 결국 권선택이 대전시장에서 물러나게 됐다는 거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14일 오전 공직선거법 및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권선택 대전시장의 재상고심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결국 권선택 시장은 임기를 6개월 앞두고 격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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