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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임진왜란 전 경복궁 모습 ‘경복궁도’ 복원
서울시, 임진왜란 전 경복궁 모습 ‘경복궁도’ 복원
  • 윤종철 기자
  • 승인 2018.02.07 10: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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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타임즈 윤종철 기자] 앞으로 1592년 임진왜란으로 소실되기 이전 최초의 경복궁의 모습을 볼 수 있을 전망이다.

서울시는 서울역사박물관(관장 송인호)이 임진왜란으로 소실되기 이전 경복궁 내 건물(전각)들의 배치 모습을 그린 <경복궁도> 족자를 원형 그래도 복원에 성공했다고 7일 밝혔다.

복원된 경복궁도에는 지금은 볼 수 없는 문소전이나 충순당 같은 조선전기 경복궁 건물이 다수 확인돼 중요한 역사적 사료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날 서울역사박물관은 지난 2016년 공개구입 후 약 1년 간에 걸친 보존처리를 완료하고 <경복궁도>를 최초 공개했다.

이번에 공개된 서울역사박물관 <경복궁도>는 족자형태의 필사본 고지도로세로127.6cm,가로 71.3cm의 족자에 세로 102.7cm, 가로 71.3cm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바탕 재질이 종이로 구성돼 있고, 쪽색 종이로 장식해 상‧하축을 달아 제작됐다.

경복궁 중건을 위해 임진왜란 이전의 모습을 고증하기 위해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1770년 영조가 세운 ‘친잠비’가 표시되어 있고 고종의 경복궁 중건 이후 새로 세워진 수정전, 집옥재 등은 빠져 있는 점을 볼 때 제작 시기는 18세기 말~19세기 후반 사이로 추정하고 있다.

‘친잠비’는 영조 43년(1767년)에 왕비가 경복궁 안에 친히 누에를 쳐 채상례를 행하고 ‘정해친잠’이라 이름 지었다. 영조 46년(1770년)에 임금이 ‘정해친잠’ 4글자를 직접 쓰고 해당관청에서 돌에 새겨서 비를 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시는 보존처리 과정에서 배접지(그림을 보강하기 위해 뒷면에 붙이는 종이)로 사용된 고문서 5점도 발견됐다고 밝혔다.

이 고문서들은 분리 후 보존처리를 실시했다. 배접지로 사용된 고문서는 학습용으로 작성한 과거 답안지(시권)로 추정된다.

옛날에는 종이가 귀해서 족자의 배접지나 병풍 속틀용 종이로 고문서를 재활용해 사용한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이것은 보존처리 과정에서만 확인할 수 있으며, 배접지로 사용된 고문서들은 유물의 제작시기가 불분명할 때 시대를 역추적 하는 단서가 되기도 한다.

앞으로 1592년 임진왜란으로 소실되기 이전 최초의 경복궁의 모습을 볼 수 있을 전망이다.

서울시는 서울역사박물관(관장 송인호)이 임진왜란으로 소실되기 이전 경복궁 내 건물(전각)들의 배치 모습을 그린 <경복궁도> 족자를 원형 그래도 복원에 성공했다고 7일 밝혔다.

복원된 경복궁도에는 지금은 볼 수 없는 문소전이나 충순당 같은 조선전기 경복궁 건물이 다수 확인돼 중요한 역사적 사료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날 서울역사박물관은 지난 2016년 공개구입 후 약 1년 간에 걸친 보존처리를 완료하고 <경복궁도>를 최초 공개했다.

이번에 공개된 서울역사박물관 <경복궁도>는 족자형태의 필사본 고지도로세로127.6cm,가로 71.3cm의 족자에 세로 102.7cm, 가로 71.3cm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바탕 재질이 종이로 구성돼 있고, 쪽색 종이로 장식해 상‧하축을 달아 제작됐다.

경복궁 중건을 위해 임진왜란 이전의 모습을 고증하기 위해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1770년 영조가 세운 ‘친잠비’가 표시되어 있고 고종의 경복궁 중건 이후 새로 세워진 수정전, 집옥재 등은 빠져 있는 점을 볼 때 제작 시기는 18세기 말~19세기 후반 사이로 추정하고 있다.

‘친잠비’는 영조 43년(1767년)에 왕비가 경복궁 안에 친히 누에를 쳐 채상례를 행하고 ‘정해친잠’이라 이름 지었다. 영조 46년(1770년)에 임금이 ‘정해친잠’ 4글자를 직접 쓰고 해당관청에서 돌에 새겨서 비를 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시는 보존처리 과정에서 배접지(그림을 보강하기 위해 뒷면에 붙이는 종이)로 사용된 고문서 5점도 발견됐다고 밝혔다.

이 고문서들은 분리 후 보존처리를 실시했다. 배접지로 사용된 고문서는 학습용으로 작성한 과거 답안지(시권)로 추정된다.

옛날에는 종이가 귀해서 족자의 배접지나 병풍 속틀용 종이로 고문서를 재활용해 사용한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이것은 보존처리 과정에서만 확인할 수 있으며, 배접지로 사용된 고문서들은 유물의 제작시기가 불분명할 때 시대를 역추적 하는 단서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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