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뉴스
-->
[신간] 마블러스 웨일즈의 일년
[신간] 마블러스 웨일즈의 일년
  • 송범석 기자
  • 승인 2018.06.07 14: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강타임즈 송범석 기자] “하늘과 바다가 하나였다. 둘 다 서로에게 휘둘리며 오르락내리락했고, 그녀는 뱃속 깊이 자리잡고 다가올 삶의 한복판에 두려움을 심은 캄캄한 부재를 불현 듯 실감하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녀는 돛을 올리고 좌석 널판에 길게 누워 울었다. 하루만 지나면 가차없는 남서풍이 불어와 배를 죽은 나뭇가지처럼 날려버릴 것임을 그녀는 알았고, 그런 일이 어서 일어나주기를 기도했다.”(p166)

환상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안 가는, 하지만 굳이 분간을 해서 소설의 묘미를 비껴나갈 필요가 없는 독특한 저자의 문체가 반짝이는 소설.

 

주인공인 마블러스 웨이즈는 구십에 가까운 나이로 어려운 세월을 견뎌내며 자신의 이야기를 잔잔하게 펼쳐낸다. 2차 세계대전이 막 끝난 시점, 전쟁은 그녀의 추억이 깃든 마을을 변하게 만들었다. 남자들은 모두 다른 누군가의 삶을 끝내기 위해, 또는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 전쟁터로 나가야만 했고, 깊은 산속 마을은 그렇게 버려졌다.

전쟁은 그녀에게서 모든 것을 앗아 갔지만 또한 선물을 주기도 했다. 전쟁에 참전했던 젊은 군인, 삶이 만신창이가 된 드레이크는 크게 상심하던 중, 마블리스 웨이즈를 만나, 잔잔하면서도 동화같은 그녀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마블러스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동화’ 같기 만하다. 주술을 듣는 듯한 아름다운 언어가 흘러나와 소실된 마음의 한자락 어루만지지만 ‘동화’는 결코 ‘동화’로만 끝나지는 않는다. 동화는 곧 현실이며, 동시에 그녀가 겪어야 했던 처절한 인생의 굴곡과 교차한다. 

흔히 몽환적인 서사 방식은 2가지 기제로 작동된다. 첫째는 현실도피. 유토피아적 이상향을 그리듯이 현실을 철저하게 무시하면서, 현실 자체에서 잉태된 부유물을 지워버리려는 노력의 결실이다. 둘째의 경우는 가혹한 현실로부터 삶을 감내하며 따스하게 자기 자신을 위안하기 위해서 일부러 말랑말랑한 언어로 인생을 어루만지는 것이다.

마블러스의 이야기는 후자이다. 어머니가 ‘인어’였다든지, 커다란 연이 풍랑속에서 마블러스를 구해내 해변으로 데려왔다든지 하는 이야기는 풍파를 겪은 마블러스와 드레이크에게 오히려 따스한 위안을 준다. 그 이야기를 듣는 독자에게도 말이다.

저자 세라 윈먼은 영국의 여배우이다. 몽환적인 문체와 상상력 넘치는 전개, 독특한 서사 구조가 이번 작품에서도 가득히 녹아들어 있다. 상처 속에서 따스한 공감과 희망을 바라는 이들에게 좋은 선물이 될 것이다.

세라 윈먼 지음 / 문학동네 펴냄

  • 한강타임즈는 언제나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 ▶ 전화 02-777-0003
  • ▶ 이메일 news@hg-times.com
  • ▶ 카카오톡 @한강타임즈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