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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타인을 안다는 착각
[신간] 타인을 안다는 착각
  • 송범석 기자
  • 승인 2018.06.20 08: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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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타임즈 송범석 기자] 우리는 평생을 살면서 과연 타인을 알 수 있을까? 여기서 ‘안다’라는 의미는 ‘인식한다’를 넘어 ‘이해한다’라는 언어를 함축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입버릇처럼 말하는 “넌 내 마음 몰라”의 어원과 정확히 병치되는 지점이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우리가 갖고 있는 서로의 전제는 저마다 다르다. 가령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가 바라보는 ‘개껌’과 내가 바라보는 ‘개껌’은 받아들이는 존재에 따라 전혀 다른 물체가 된다. 마찬가지로 내가 갖고 있는 30년이 된 손때 묻은 수첩을 내가 바라보는 감각과 타인이 바라보는 감각은 전혀 다른 존재로서 의미를 환산한다. 이런 의미에서 서로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 자체는 이 세상에 살아가는 사람의 숫자만큼 많다. 

 

그럼에도 우리는 과연 누군가를 이해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저자들의 물음은 여기서 시작된다. 뇌과학자인 요로 다케시와 정신과 의사 나코시 야스후미는 타인을 이해하려고 하는 노력의 실체가 근본적으로는 달성될 수 없음을 직시한다. 애초에 타인은 알 수 없는 존재이며, 의미를 알려고 노력하느니, 모르는 채로 행동하는 게 낫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각자의 삶을 인정하며 그 안에서 의미를 찾으려고 억지를 부리지 말라는 이야기이다.

저자들은 ‘의미 있는 일’ 또한 현대사회가 배태한 재앙이라고 지적한다.

그 중 하나가 출산문제이다. 아이들에게서 어떠한 의미를 찾고 이를 ‘관리’하고자 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 저자들은 이 대목에서 번뜩이는 통찰을 내놓는다. 저자들에 따르면 애초에 아이들은 ‘자연’ 그 자체이다. 자연은 본래 의미가 없다. 의미를 만드는 일은 인간의 몫이고, 의미 없이 그대로 원래 존재하는 게 자연의 몫이다. 

아이들을 낳고 기르는 것 또한 자연의 섭리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자연의 한 부분을 경작하는, 농사는 본질적으로 ‘의도적인 관리’라는 게 불가능하다. 그해에 태풍이 불지, 가뭄이 일지, 혹은 풍작일지, 어떤 일이 어떻게 벌어질지 모르며 다만 정성을 가지고 지켜볼 뿐이다. 마찬가지로 아이들을 완전히 방치하면 문제아가 되지만, 반대로 부모가 완벽히 관리한다고 해도 또한 문제아가 될 뿐이다. 농사를 짓듯 마음을 담아 보살피고 지켜보는 게 자녀교육의 기본이다.

이러한 자연성을 기반으로 한 ‘출산’에 대한 안 좋은 인식이 점점 더 커져가고 있는 원인을 저자들은 ‘의식화’에서 찾는다. 무엇이든 현상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려는 인간 뇌의 습성 때문에 자연 그 자체로 인식돼야 하는 출산에서도 이득과 손해를 따진다는 지적이다. 즉 출산이란 합리적이냐 비합리적이냐를 따질 문제가 아니라는 조언이다. 

이러한 관점은 상당히 새롭다. 조간신문에 10년째 계속되고 있는 ‘경제력 때문에 출산을 포기기했다’, ‘경력단절 때문에 아이 낳기가 힘들다’는 기사에 적힌 표면적인 이유를 넘어 그 본질을 매만지고 있기 때문이다. 결론은 이렇다. 우리의 ‘뇌’가 모든 현상에 대한 의미를 따지게 됐고, 자연으로서 가치판단이 개입될 여지가 없는 부분이 출산까지도 가치판단의 영역으로 편입돼 손익을 따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항변은 있다. 본질은 그렇다 인정하더라도 현실은 여전히 현실이다. 이 부분에서 저자들은 분명하게 짚는다.

“결혼해서 아이를 기르면 손해가 되는 일이 많고, 경제적으로 손해를 본다는 생각을 많이들 갖고 있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사회 전체에 그런 가치관이 퍼져 있고, 그래서 아이에 대한 부정적인 가치관이 근본적으로 어디서 왔는지를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인류가 뇌를 발달시킨 결과는 현대사회 곳곳에 투영돼 있다. 

그 중 또 하나가 ‘같음’에 대한 인식이다. 이와 관련한 사자성어 ‘조삼모사(朝三暮四)’에 대한 저자들의 분석은 송곳처럼 예리하다.

조삼모사란, 저공이란 인물이 원숭이에게 아침에는 세 개, 저녁에는 네 개의 도토리를 주려고 할 때 원숭이들이 반발하자 아침에는 네 개, 저녁에는 세 개의 도토리를 주는 것으로 말을 바꿨더니 원숭이들이 좋아했다는 일화를 담고 있다. 똑같은 결과를 잔꾀를 써서 그럴듯하게 포장할 때를 지칭하는 사자성어인데, 사실 숫자로만 판단하는 인간에게는 똑같은 도토리이겠으나, 원숭이에게는 아침에 받는 네 개의 도토리와, 저녁에 받는 네 개의 도토리는 완전히 다른 의미이다.

저자들은 더 쉬운 예를 든다.

고양이를 부를 때 부부가 똑같이 ‘나비’라고 부르지만, 고양이가 들을 때에는 남편이 부르는 ‘나비’라는 단어와 아내가 부르는 ‘나비’라는 단어는 완전히 다르다. 고양이는 ‘의미’가 아니라 ‘감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나비’라는 말을 누가 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언어로 다가오는 것이다. 이것이 ‘의미’와 ‘감각’의 차이이며, 인간이 만든 ‘의식화’와 자연이 본래 품은 ‘자연화’의 차이점이라고 저자들은 강조한다.

이런 맥락에서 자기 자신을 포함해 타인, 세상을 근본적으로 이해하려면 고정되어 있는 정보나 지식이 아니라 바로 ‘감각’을 길러야 한다고 두 저자는 강조한다. 인간의 뇌가 창조한 ‘의식화’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은 책.

요로 다케시 ‧ 나코시 야스후미 지음 / 휴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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