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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사과파이 나누는 시간
[신간] 사과파이 나누는 시간
  • 송범석 기자
  • 승인 2018.06.25 07: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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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타임즈 송범석 기자] 소설 <코끼리>를 통해 한국 이주노동자, 결혼노동자들의 인권 문제를 다룬 김재영 작가의 신간이다.

사회가 생산해낸 부조리에 침식당해 숨을 헐떡이는 우리 이웃들, 그리고 그런 이웃들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우리 자신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리와 우리 이웃들은 마땅히, 망가진 삶에 대한 사과를 받아야 하지만, 사실은 사과를 해줄 대상도, 그리고 사과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이 소설의 제목이 <사과파이 나누는 시간>인 것도 그러한 연유에서이다. 

8편의 단편은 저마다 어떠한 이유로 시간의 발길질에 차이고, 또는 지나간 추억의 윤곽을 더듬으며, 현재가 가져다 준 삶의 무게에 짓눌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현실에서 등진 채 죽음으로 나아가진 않는다. 어떤 이유로든 꾸역꾸역 살아야 할 이유를 부여잡고, 어두운 미래에 은닉한 새로운 삶을 더듬어간다.

 

표제작 <사과파이 나누는 시간>에서 주인공 ‘미래’는 비정규직으로 비틀대는 직업을 전전하다가 그만둔 뒤 소꿉친구 ‘우주’와 묘한 관계를 이어간다. 우주에게 주기 위해서 사과파이를 굽던 미래는 우주가 들려주는 ‘최신 우주에 대한 이야기’, 예컨대 중성자별, 암흑물질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관심이 없던 세상의 부조리에 대한 지각을 점점 깨워간다. 그것은 빛과 어두움, 그리고 세계를 지탱하고 있는 존재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주의 대부분이 알 수 없는 암흑물질로 이루어져 있다는 건 정말 놀라워.”

“그치? 나도 처음엔 그랬어. 하지만 세상 모든 것이 반짝여야 할 필요는 없잖아?”

“하긴 빛을 내지 않는 것들도 얼마든지 있지. 평범한 시민인 너와 나처럼.”

두 사람의 대화속에서 암흑물질은 곧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로 치환된다. 그러나 암흑물질은 이내 우주에서도 그리고 이 세계에서도 존중을 받지 못한다는 걸 미래는 온몸으로 깨닫게 된다.

‘용산참사’와 똑같은 일이 소설속에서 벌어지고, 망루에 올라가 강제 철거를 거부하던 미래의 이웃들은 불에 타서 죽게 된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있었던 우주 역시 수년간 옥살이를 하게 된다. 현실에서도 그렇듯 무리한 진압에 대한 여론이 일었지만 그럼에도 공직자의 사과는 이뤄지지 않는다.

“사과하지 않는 한, 어떤 잘못을 하든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걸 시민들은 알게 되었다. 높은 곳에서 시작된 사과 없는 문화는 점점 아래로, 아래로 흘러내렸다. 더 이상 이 도시에선 아무도 사과하지 않는다. 사과음료도, 사과파이로 잘 팔리지 않는다. 어이없는 참사가 반복될 뿐이다.”

미래와 우주가 나눴던 사과파이는, 사회 저층 노동자들이 나누는 교감의 상징성을 내포한다. 공권력이 투입되면서 ‘범법자가 된 순간’ 더 이상 그 사과파이를 나눠줄 수도 없게 되었다. 이제는 사과파이를 나눌 수 있는 대상도, 세계도 사라진 것이다. 떠나간, 떠날 수밖에 없는 이웃들에 대한 그리움의 부피가 커질수록 사과파이를 나누지 못하는 허전함도 더해진다.

저자는 “생이 드러내는 아름다움의 지푸라기 하나라도 건져 올리기를 바라며 글을 썼다”고 전한다. 어떠한 상처들도 쉽게 상실되어선 안 된다는 치유의 언어가 가득한 소설.

김재영 지음 / 자음과모음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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