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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놀러 가자고요
[신간] 놀러 가자고요
  • 송범석 기자
  • 승인 2018.06.27 08: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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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타임즈 송범석 기자] “떡 먹는 기억은 나는데 그 떡이 그 떡이었나. 회관에다가 떡 갖다 놓는 사람이 하도 많아서. 떡 애기가 나와서 말인데, 이왕이면 신식 떡으로 해왔으면 좋겠슈. 하나씩 까먹기 좋고 보관하기 좋은 거. 떡은 떡이고 되게 미안시류. 문병 간다 간다 하고 결국에 못 가고 말았슈.”

이게 뭔 ‘떡 먹는 이야기’인가 싶다. 참, 문장이 찰지다. 어릴 때 읽었던 김유정의 <봄봄>이 떠오르는 경험들은 이 소설의 처음부터 끝을 오롯이 관통한다. 문장과 문장의 이음새가 어색하지 않고, 현지인이 쓴 것처럼 찰싹 찰싹 입에 달라붙는다. 이게 모국어인 우리 국어의 매력이리라. 폭포가 흘러내리듯 콸콸 쏟아 붇는 만남 속에 우리 이웃의 끈끈한 정과 농촌의 정겨움이 그대로 나타난다. 

 

저자는 생각하기에도 ‘사소한’ 이야기를 ‘대서사시’로 바꿔놓는 재주가 있다. 장기를 좋아해서 장기에 미친 어린 소년이 동네 장기계를 평정하다가 결국 어르신들의 훈수에 성질을 못 이기고 어르신들의 ‘싸가지 없는 행동’을 해서 쫓겨나는 일화에선 ‘이런 소소한 이야기를 어떻게 이렇게 찰 지게 바꿔놓을 수 있나’하는 생각까지 든다. 

가령 이앙기가 이제 막 보급되기 시작할 즈음, 전설적인 모내기의 달인과의 이앙기의 대결은 한일전 축구를 보는 것만큼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모내기의 달인인 ‘모심지’는 11 대 1로 치러진 모내기 대결에서 이긴 모심기의 ‘신(神)’으로 불리는데, 이후 네 줄씩 심을 수 있는 수동 이앙기가 나왔을 때 그는 거침없이 기계와 대결을 하게 된다.

이 흥미진진한 대결의 승자는 ‘모심지’였다. 압도적으로 이앙기가 앞서 나갔지만, 이앙기가 고장이 나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걸 고치는 동안 ‘모심지’가 역전을 했고, 고친 이앙기가 추격전을 펼쳐서 거의 동시에 끝을 냈지만, 결과는 ‘모심지’의 승리였다. 하지만 8줄 승용이앙기가 나온 뒤에는 모심지도 더는 기계를 이길 수 없게 됐다. 

그런가하면 노인회장의 처인 ‘오지랖’ 여사가 생애 마지막일 수도 있는 ‘나들이’를 계획하고 인원수를 맞추기 위해서 전화를 돌리는 모습에서는, 사람들의 수다에 웃음이 피식, 피식 터진다. 

놀러가자고 전화를 했는데 대뜸 호랑이 새끼를 잡았던 이야기가 나오는 식이다.

“무슨 일로 전화하셨는지 몰라도 아버님이 거시기가 거시기하셔서 오락가락하셔요. 요새는 옛날에 호랑이 새끼 잡았던 애기만 계속 하시고 그래요.”

“참말로 호랑이 새끼를 잡았었단 말이에요?”

“참말인지 거짓말인지는 모르겠는데 신문에는 나왔었지요. 코팅한 옛날 신문이 벽에 가보로 붙어 있는 걸요.”
“암튼 영감님은 놀러 가시는 것은 어렵겠네요.”

“당연하지요. 도저히 안 되겠어요. 요양원으로 모셔야지. 정말 치매 노인네 모시기 너무 힘들어요. 얼치기 효녀 노릇도 1, 2년이지, 더는 못하겠어요.”

“그래요, 요새는 다들 좋은 데로 모십디다.”

“그죠. 저 나쁜 년 아니죠?”

“그럼요. 누가 나빠. 1, 2년 모신 것만으로도 효녀 중에 효녀네요.”

“그런데 왜 자꾸 죄스러운 걸까요.”

소설은 이런식이다. 어르신들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아주 소소한 일들, 고향에 내려가면 흔히 듣게 되고, 피식하게 되는 웃음들을 한자리에 모아놨다. 그 안에 해학과 서로를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 그리고 치유의 감정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이곳에서 농촌의 일상은 더 활력이 넘치고 흥미롭게 펼쳐진다.

한평생 소박하나마 충실하게 살아온 자들의 이야기를 재구성하여 기억할 만한 사건으로 만들겠다는 저자의 다짐이 따스하게 울려퍼진다.
 
김종광 지음 / 작가정신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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