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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언젠가 떠내려가는 집에서
[신간] 언젠가 떠내려가는 집에서
  • 송범석 기자
  • 승인 2018.07.17 08: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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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타임즈 송범석 기자] “그녀가 듣고 보고 말한 것들. 편지도 시도 아닌 그저 문장 몇 개에 지나지 않았다. 언젠가는 시와 비슷한 것을 쓰게 될 날이 올까. 그런 날은 영영 오지 않는다고 해도 괜찮을지 몰랐다. 그것이 길을 잃는 것과 비슷하다면 잠시 한 번 크게 돌아오는 것일뿐. 살고 있으면 지금보다는 가까이 닿게 될 거라고.” (p34 - <매일 건강의 시> 中)

표제작 <언젠가 떠내려가는 집에서> 아버지와 단둘이 살고 있는 서른 일곱 살의 ‘남자’는 마음 한켠이 허전하다. 내면 속에서 흔들리는 무언가가 마음을 움켜쥔다. 그게 무엇일가, 화자는 골똘히 생각하다가 자신이 지금 여기 있는 것 자체가 ‘자격 미달’이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정확히 나오진 않지만, 화자는 태도에서부터 묘한 공허감을 자아낸다.

남자네 아버지의 나이는 일흔이 넘었다. 아버지는 까다로운 사람이 아니지만, 밥 대신 막걸리를 꼭 저녁마다 마시는 버릇이 있다. 냉장고에 막걸리가 떨어지지 않게 하는 것, 그것이 남자의 몫이기도 했지만 가사도우미 ‘경아’가 들어오면서 그녀에게 하나하나 당부를 하게 된다. 그리고 아버지의 아버지 때부터 썼다는 거실의 괘종시계가 죽지 않도록 하루에 한 번씩 태엽을 감아야 하는 것도 ‘경아’가 해야 할 일 중 하나였다. 두 남자가 스스로의 무게에 짓눌려 죽지 않도록 오며가며 괘종시계처럼 돌봐야 할 경아의 ‘업무’가 스쳐가는 지점일지도 모른다.

 

남자의 아버지는 지역의 구 의원에게 뇌물을 주면서까지 자신의 공장을 지켜가며 억척스럽게 살아왔다. 두부압축기, 소머리절단기, 육류칼집기, 골절기, 닭탈모기 등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이다. 

후에 남자는 스스로 ‘자격 미달’이라고 느끼는 데 대한 이유를 넌지시 밝힌다.

“아버지는 언젠가 나에게 너는 다른 집에서 왔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p75)

‘다른 집’이 입양을 뜻하는지, 아니면 또 다른 것을 의미하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그러나 남자는 교회 옆에 긴 계단에 설치돼 있는 ‘베이비 박스’를 이따금씩 떠올리며 뿌옇게 칠해진 자신의 출생 흔적을 더듬어 본다. 그러는 동안 남자는 데면데면하던 경아와도 제법 친해진다. 다섯 번 횟수를 타나날 대 쓰는 ‘바를 정’자를 몸에 새긴 경아는 3년이나 소년원에서 세월을 보낸 여자애다. 예사롭지 않은 삶을 살아왔던 경아를 통해 남자도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그러던 중 경아가 무리한 다이어트로 담석 제거 수술을 받게 되고 남자의 집에서 요양을 하게 된다. 닮은 데가 없는듯하나 남자나 경아, 둘 다 ‘가족’이 어우러지는 생활은 허락받지 못했다. 경아에게선 가족 이야기는 들을 수 없고, 남자 역시 너를 어디선가 데려왔다고 선언한 아버지 외에는 가족의 그림자를 알지 못한다. 그러나 경아가 시나브로 ‘가족’이라는 범위에 차츰차츰 녹아들어오면서 남자는 또 다시 ‘베이비 박스’를 떠올리게 된다. “버려졌다”는 의식의 층위는 그에게 ‘제 자리가 어디인가’라는 또 다른 질문을 넌지시 던진다. 그러면서도 남자네 집에 서서히 ‘입양’되다시피 하는 경아의 모습을 확인하면서 과연 제 자리라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심연에 깊은 파동을 던진다.

조경란의 일곱번째 소설집 <언젠가 떠내려가는 집에서>는 단편소설집으로는 5년 만에 출간됐다. 작가는 1996년 등단 이후, 그간 여섯 권의 소설집을 포함해 총 열다섯 권의 단행본을 출간한 섬세한 문장의 궤적이 굵은 작가이다.

조경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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