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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구월의 살인
[신간] 구월의 살인
  • 송범석 기자
  • 승인 2018.07.24 08: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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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타임즈 송범석 기자] 소설의 배경이 되는 사건은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한다. 효종 1년(1650년) 2월 27일에 한 살인범이 혹독한 심문을 받다가 ‘마침내 자신이 찌른 정상을 자복하였으나’ 끝내 자신이 죽인 자의 ‘종이 된 것에 대해서는 불복하였다’고 실록은 전한다.

300백여 년이 지난 지금 봐도 수상한 이 결말의 끄트머리를 저자는 특유의 단단한 플롯을 통해 실존으로 이끌어낸다.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이 정도의 추리물을 구성할 수 있는 것은 오롯이 작가 김별아의 역량 덕이다.

한양의 한복판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의 살인범은 ‘구월’이라는 20대의 여인. 본래 강도 사건으로 처리가 될 뻔한 것을 조선의 셜록 홈즈를 방불케하는 ‘전방유’라는 이름의 형조 좌랑이 파헤치면서 진범을 잡게 된다.  

 

문제는 살인의 동기. 여종인 ‘구월’이 어떤 이유로 살인을 하게 되었는지가 이 소설의 구심점을 이끌어간다. 세월이 고통을 절여가기 전, ‘구월’에게는 미래를 약속한 한 남자가 있었다. ‘석산’ 그도 역시 종이었다. 다만 ‘미래를 약속했다는 말’은 당시와 지금이 매우 다른 의미로 이어진다. 당시 종은 주인의 소유물이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때려 죽여도 적당한 핑계를 대면 주인의 처벌은 면제가 되던 시절이었다. 

그런 시절의 한가운데에서 ‘석산’은, 짐승의 삶에 속해 인간의 탈을 쓰고 살아가는 주인으로부터 ‘속량’이라는 약속을 받는다. 속량이 되면 면천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에 노예가 아닌 양인의 신분으로 살 수 있다는 희망의 씨앗이 두 사람의 마음속에 뿌려진다.

하지만 짐승의 마음을 가진 주인은 약속 자체를 기억을 못했고, 기어이 짐승처럼 다른 종들을 시켜 속량을 언급했다고 하는 이유로 ‘석산’을 갈기갈기 찢는다. 현장에서 모든 걸 지켜본 ‘구월’은 피눈물을 흘리며 그 길로 복수를 결심하고 전 주인인 ‘김태길’을 살해하게 된 것.

살해의 동기나 과정은 진즉에 밝혀지지만, 하나의 살인 사건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정치 싸움과 노예는 사람이 아니라 물건일 수밖에 없는 시대상이 우리가 앓고 있는 현재의 고통과 병치된다. 노예에게 길은 어디에도 없고, 죽음은 어디에나 있었으며, 저자는 일차원적으로 단지 신분적 부조리만을 직시하진 않는다. 그 너머를 본다. 정의와 진실, 기만과 거짓은 본디 한배에서 태어났다는 점에서다.

“앞으로 자네가 만나게 될 건 거짓일세. 무수한 거짓들이, 잘 장치된 기만들이 자네는 속이려고 달려들 걸세. 정의를 세우기 이전에 거짓에 속아 넘어가지 않는 법을 깨달아야 하지.” (p70)

아무도 믿지 않으면 속이려고 하는 사람이 보인다. 명백한 죄와 합당한 벌 이전에 존재하는 그 무엇. 저자 김별아는 말한다.

“정의는 부정(不正)의 부정(否定)일 수밖에 없으리니.”

우리가 사는 세계는 과연 어떤 명제로 구축되고 있나.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개념화된 정의인가, 아니면 그에 대한 부정인가. 그것도 아니면 모든 것에 대한 부정인가.

김별아 지음 / 해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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