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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모든 저녁이 저물 때
[신간] 모든 저녁이 저물 때
  • 송범석 기자
  • 승인 2018.08.17 16: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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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타임즈 송범석 기자] “딸이 식탁에 자리를 잡은 다음에야 어머니는 말한다. 우리는 절약해야 한단다. 일곱째 날이 되어서야 딸은, 자기 자신도 누군가의 딸이라는 사실을, 그것도 생명을 가진 딸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닫는다. 그 딸의 생명이 17년이란 짧은 유예가 지난 지금에 와서야 위기를 맞고 있다는 것도. 어떤 소망은 영원히 이루어지지 않지만 그 여부가 언제 확정되는지 인간은 아직도 알지 못한다.” (p35)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이가 죽었다. 그때부터 모든 삶의 기울기가 하강한다. 죽음 속으로, 죽음 속으로, 각자의 죽음의 방식은 각자의 삶의 응축된 덩어리로 현실로서 잉태된다. 누군가는 침묵으로, 누군가는 화로, 누군가는 체념으로. 누군가는… 누군가는…. 하지만 한 번쯤 생각해봤을까? 그 죽음의 주체가 나였다면? 그리고 내가 다른 때에 다른 방식으로 죽었더라면? 어떻게 될까?

 

하나의 죽음이 어떤 기제로 사람의 심연을 움직이는지 섬세하게 표현된 소설 <모든 저녁이 저물 때>는 예니 에르펜베크의 작품이다. 그녀는 일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잉게보르크 바하만상(2001)’을 수상한 소설가이다. 

소설은 환영적인 소재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한 여인이 다섯 번의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겪는 다섯 번의 죽음이 그 주제이다. 죽음은 이어지지 않는다. 각각의 죽음은 개별적인 삶을 나타낸다. 여기서 문제는 ‘선택’이다. 여자는 언제 죽는지에 따라서, 죽음이 가지는 다양한 얼굴을 직시한다. 작가는 묻는다. “만일 당신이 그때 죽었더라면 어땠을까?” 섬뜩한 질문이지만, 그 무게의 묵직함은 삶을 진중하게 돌아볼 수 있는 서사를 선물로 전한다.

외려 “그때 죽지 않고 지금 살아 있었던 것은 한 번이라도 우리 삶을 긍정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여자가 갓난아기로 죽었을 경우, 성인이 되어 낯선 남자에게 살해당하는 경우, 히틀러 시대에 억울하게 스파이로 지목되어 처형당하는 경우, 중년에 발을 헛디뎌 난간에 떨어져 죽는 경우, 노년에 치매를 앓다가 요양원에서 죽는 경우 등 5가지의 죽음이 독자를 기다린다.

결코 친밀하지 않은 죽음, 그러나 그 죽음 가운데에서 다시 삶의 의미를 건져올릴 수 있는 것은 오롯이 예니 에르펜베크의 필력 덕분이다.

예니 에르펜베크 지음 / 한길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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