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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불온한 숨
[신간] 불온한 숨
  • 송범석 기자
  • 승인 2018.09.03 08: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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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타임즈 송범석 기자] “나는 죽음 같은 나락으로 힘없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그동안 내가 은폐해놓았던 밑바닥으로 한없이 추락하는 듯했다. 곧 이어 깊은 우물의 표면에 감춰놓았던 내 얼굴이 비쳐 보일 것만 같았다. 아무도 보아서는 안 되었다. 나는 바닥을 짚고 온몸을 떨고 있었다. 크리스티나가 내게 던졌던 질문이 어둠 속에서 날렵하게 손을 뻗어와 내 손목을 덥석 잡았다. 마담 당신은 누군가를 사랑해본 적 있나요? 죽어도 좋을 만큼 누군가를 끌어안고 싶었던 적이 있나요?” (p43 <강> 중에서)

도피하듯 돌아선 삶의 끝자락에는 억압된 기억의 편린이 가득하다. 이 서사의 주인공은 일곱 살 때 싱가포르로 입양된 여자와 그녀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야 했던 한 남자이다. 서사는 갈등과 오해의 농축으로 짙어지고, 고통의 기억으로 불온한 삶을 축적한다.
 

 

은퇴를 앞둔 전설로 남은 무용가 제인. 그 앞에 남자 텐이 나타난다. 텐은 누구도 선보이지 못했던 파격적인 춤으로 전세계의 관심을 받고 있는 안무가. 몸의 기력이 예전 같지 못한 제인은, 자신의 몸이 이제 더 이상 전설로 남을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 사실을 쉽게 인정할 수 없다. 진통제를 먹어가며, 온몸에 파스를 칭칭 둘러가며 다시 한 번 날갯짓을 꿈꾼다. 그것이 그녀가 살아가는 의미였으니까.

그런 와중에 텐의 욕망은 제인 앞에 똬리를 튼다. 안무가 텐은 제인이 자신의 무대 위에서 춤을 춰달라고 요청한다. 어두운 색으로 물들어 있는 과거를 멀리 떠나보내고만 싶었던 제인은 ‘예전부터 당신을 알고 있었던 사람’이라는 텐의 말에 선뜻 내키지는 않았지만, 텐의 적극적인 태도에 당황해한다.

그리고 텐이 제안한 안무를 보는 순간, 떠올리기 싫은 과거가 제인의 기억 속에 삽입된다. 텐이 제안한 춤은 제인이 대학에서 마리 선생과 맥스라는 남학생과 추었던 춤이었다. 춤은 인간이 취할 수 있는 깊은 향락으로 시작해, 파멸로 끝이 났다. 욕망과 생의 끝자락을 무대로 삼아서 췄던 춤들. 떠올리기 싫은 기억. 마리와 맥스는 이미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제인은 어떤 연유로 텐이 이 안무를 알게 됐는지 궁금해 하면서도, 심한 내적 위협감을 느낀다.

서서히 떠올려가는 기억의 저편 속에서, 제인은 자신의 토해냈던 ‘불온한 숨’을 다시 한 번 상기한다.

절대 완벽할 수 없는 한 인간은 완벽함을 꿈꾼다. 그 완벽함 속에서 튕겨나간 우리의 과거와 그 욕망을 채우기 위해 희생당한 타자들의 삶은 인생이라는 기억이라는 무대 위에서 끊임없이 춤을 춘다. 

인간 내면의 슬픔과 고독, 불안, 애도의 표정들을 220쪽 남짓한 분량에 녹여낸 소설.

박영 지음 / 은행나무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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