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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청와대 개입 사건 축소·조작” 결론
과거사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청와대 개입 사건 축소·조작” 결론
  • 이지연 기자
  • 승인 2018.10.11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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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타임즈 이지연 기자]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위원장 김갑배)가 대검 진상조사단으로부터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가 “청와대 개입으로 사건을 축소·조작됐다”는 조사 결과를 보고받았다고 11일 밝혔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지난 1987년 1월14일 오전께 치안본부 대공수사2단 소속 경찰 5명이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박종철을 물고문해 숨지게 한 사건을 말한다. 이 사건은 전두환 정권에 맞서 시위하던 연세대 이한열 열사가 경찰 최루탄에 사망 위기에 처한 상황과 맞물리면서 6월 항쟁의 불씨가 됐다.

이용구 법무부 법무실장이 5월 3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 브리핑룸에서 검찰과거사위원회 조사대상 사건 선정과 관련한 발표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이용구 법무부 법무실장이 5월 3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 브리핑룸에서 검찰과거사위원회 조사대상 사건 선정과 관련한 발표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대검 진상조사단은 이 사건 발생 다음 날 국가안전기획부장, 법무부장관, 내무부장관, 치안본부장, 검찰총장 등이 참석한 회의가 열렸고, 이후 검찰은 청와대의 압력을 받고 직접 수사를 포기, 이후 치안본부가 수사를 담당하게 된 것으로 파악했다.

조사단은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그해 5월18일 은폐 의혹을 폭로하기 전까지 검찰이 청와대를 의식해 공범이 추가로 더 있는지 여부에 대한 수사에 착수하지 않았다고 봤다.

정구영 당시 서울지검장은 지난 8월8일 조사단 면담에서 "검찰총장이나 법무부장관이 본래 나한테 부탁하듯이 말할 이유가 없으니까 대강 이게 청와대 뜻이라고 생각했다"며 "검찰총장은 자꾸 '일주일만 있다가 하자'고 했고, 일주일이 있으면 또 일주일 하고 그렇게 새월이 흘러갔다. 그러던 중 정의구현전국사제단에서 발표해주니 오히려 속이 시원했다"고 진술했다.

사진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사진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당시 폭력에 가담한 것으로 알려진 5명 가운데 구속된 고문경찰관 2명이 심경 변화를 일으켜 추가 공범을 밝히려 하자, 치안본부 대공5차장 등 간부들이 그해 4월2일 특별관리하던 자금 2억원으로 회유한 것으로 조사됐다. 실제로 고문경찰관 가족들은 치안본부장 및 간부들로부터 위로금, 생활비, 이사비용 등을 지원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박 열사가 사망한 고문실의 폐쇄회로(CC)TV 확인을 생략하는 등 속성·날림 수사를 한 정황도 포착했다.

조사단 최종보고를 받은 과거사위원회는 "사건 발생 초기 검찰이 치안본부의 조작·은폐 시도를 막고 부검을 지휘해 사인이 물고문으로 인한 질식사임을 밝혀낸 점은 높게 평가받아 마땅하다"면서도 "검찰은 정권 안정이라는 정치적 고려를 우선해 치안본부에 사건을 축소·조작할 기회를 줬고, 치안본부 간부들의 범인도피 행위를 의도적으로 방조했다"고 심의했다.

이에 따라 과거사위는 정보기관이 안보사범 등에 대한 검찰 수사 내용을 통보받거나 사건에 관여할 수 있도록 한 '안보수사조정권' 관련 대통령령에 대해서는 "냉전이데올로기 시절 권위주의 정부의 유물에 불과하다"며 폐지를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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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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