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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낙태죄 논란.. 남성도 자유롭지 못 해
[기자수첩] 낙태죄 논란.. 남성도 자유롭지 못 해
  • 이지연 기자
  • 승인 2019.02.18 18: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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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타임즈] “고등학교 3학년 때 임신을 했어요. 만삭의 몸으로 졸업식도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출산 당일 동갑이었던 아이의 아빠는 대학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하고 있었죠. 지금도 아이는 저 혼자 키우고 있어요”  

지난해 ‘미혼모 정부지원’과 관련한 취재를 위해 만났던 여성들 중 한명의 사연이다. 아이를 출산해 양육에 최선을 다하면서도 여전히 그들에게는 ‘미혼모’라는 주홍글씨가 발목을 잡는다. 반대로 낙태를 원하는 여성들에겐 ‘살인마’, ‘이기적인 여자들’의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낳아 키워도, 포기해도 결국 모든 책임과 비난의 화살은 오롯이 여성들의 몫으로 남는다.

현재 한국을 포함해 ‘임신중절’을 금지한 국가는 아일랜드, 뉴질랜드, 폴란드, 칠레, 이스라엘 등 6개국이다. 이 가운데 아일랜드는 지난해 5월 국민투표로 낙태 금지를 규정한 헌법 규정 폐지가 결정된 상태다. 현재 임신 12주 이내 수술엔 제한을 두지 않고 12~24주 사이 특정 사유에 대해 낙태를 허용하는 법안이 제출돼 있다.

현재 한국은 모자보건법 제14조에 크게 5가지 경우에만 임신중절을 허용하고 있다. 본인·배우자가 우생학·유전학적 정신질환이나 신체질환,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한 임신,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이나 인척간 임신, 임신의 지속이 보건의학적 이유로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는 경우 등이다.

최근 낙태법 개정이 이슈로 떠오르며 다양한 기사가 쏟아지는 가운데 온라인 기사 댓글란에는 “애는 무슨 죄냐?”, “살인자들의 합리화” “낙태 합법화할 거면 여자의 과거 낙태 기록을 확인할 수 있게 해라. 남자 입장에선 낙태 경험 있는 사람과 결혼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등의 말들로 도배됐다.

지난해 9~10월 15~44세 여성 1만명을 대상으로 이뤄진 실태조사에서 인공임신중절을 경험한 여성 756명(성경험 여성의 10.3%, 임신경험 여성의 19.9%) 상당수도 사회·경제적 이유를 꼽았다.

임신중절을 하게 된 이유(복수응답)로 10명 중 3명가량이 '학업, 직장 등 사회활동에 지장이 있을 것 같아서' 33.4% ,'경제상태상 양육이 힘들어서(고용불안정, 소득이 적어서 등)' 32.9%, '자녀계획 때문에(자녀를 원치 않아서, 터울조절 등)' 31.2% 등을 꼽았다.

임신중절의 사회·경제적 이유에 따른 허용 여부에 대해선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를 위해선 인공임신중절을 범죄시하기보다 사회적 지지와 지원이 선행돼야 한다. ‘인공임신중절’이 발생하는 실질적인 근간에는 개인이 자신의 미래를 꿈꾸고 다음 세대를 재생산하는 것이 불가능한 사회적인 조건이 있다.

임신중지 합법화와 함께 의료접근성 및 정보접근성 확대, 건강보험 적용 사회경제적 여건 보장, 성차별 완화 정책 확대, 사회적 낙인 제거 등 노력을 다각적으로 기울여야 한다.

왜 여성은 여성의 몸에 대한 결정을 내리면서 공포와 수치심에 떨어야 하는지, ‘낙태’는 왜 국가가 규정한 형법상의 죄인지, 왜 남성과 국가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지. ‘여성은 아이를 낳는 존재이기 전에, 온전한 삶을 살고 싶은 사람’이라는 목소리에 모두가 깊이 귀 기울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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