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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나와 타자들
[신간] 나와 타자들
  • 송범석 기자
  • 승인 2019.04.17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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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타임즈 송범석 기자] 포퓰리즘은 실체를 갖고 있을까? 많은 사람이 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무엇이 포퓰리즘이며, 포퓰리즘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이에 정통한 학자들에 따르면 포퓰리즘은 그 정체성을 통해 사회를 가로지르는 핵심 경계선을 만든다. 하나의 정체성으로 전선을 구축하는 것이다. 더 자세하게 포퓰리즘은 정체성을 사회적인 것을 협상하는 곳, 즉 민주주의를 다루는 무대 위로 올린다. 그런데 이 포퓰리즘에는 한 가지 원칙이 있다. 즉 협상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협상하지 않고 나눌 수 없으며 화해할 수 없는 문제에만 집중한다.

이 지평에서 출발한 포퓰리즘은 ‘공격’으로 진화한다. 공포와 거부감만이 수용되고 강화되며 포퓰리즘의 감정의 체제는 온전히 서로가 공격해야 할 적대세력을 향한다. 이른바 적을 규정할 때에 작동하는 정체성이다. 결과적으로 포퓰리즘은 완전히 친구와 적이라는 배치 안에서 정착한다. 그리고 그 안에 핵심 개념을 덧씌우는데 그것이 바로 ‘국민’이다.

 

더 나아가 포퓰리즘의 궁극적인 전략은 민주주의에서 너무나 추상적인, 그래서 정의할 수 없는 개념인 ‘국민’을 끌어와서 마치 실제로 국민이 살아 존재하는 것처럼 묘사한다. 실제 실체화를 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포퓰리즘의 전략이다. 

과연 민주주의에는 ‘국민’이 존재할까? 

<나와 타자들>의 저자이자 빈 대학에서 철학 강의를 한 철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인 이조델 카림은 이렇게 말한다.

“역설적으로 들리지만 민주주의에서 ‘국민’은 존재하지 않는다. 국민 개념은 모든 것의 기초가 되는 개념이고, 법적 정당성을 주는 개념이며, 그렇기 때문에 어떤 형식으로든 최종적으로 점유되지 않는 텅 빈 자리이다.”

그럼에도 우파 포퓰리즘은 바로 이 추상화를 무력화한다. 포퓰리즘은 추상적인 국민에게 구체적인 형태를 부여하고, “우리가 유일한 국민이다”라는 유령을 끌어와 다른 쪽을 공격한다. 

포퓰리스트는 자신들이 이 국민의 모습을 잘 알고 있다는 환상을 생산한다.

더 나아가 포퓰리즘은 타자를 배제한다. 타자의 배제가 우리 내면의 위협처럼 보이는 것을 방어한다고 변명하며, 오직 지금 여기에서의 국민의 영광을 목청껏 부르짖는다.

도널드 트럼프의 표어 “아메리카를 다시 위대하게”는 바로 이러한 본질에 부합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트럼프의 미국, 마크롱의 프랑스, ‘브렉시트’의 영국에서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무엇인가? 오스트리아의 철학자 이졸데 카림은 타자 혐오라는 현상의 배경인 다원화 과정을 추적하여, 오늘날 주체와 정치적 욕망에 대한 극히 날카로운 분석을 전개한다. 초등학교 교실에서 ‘다문화’가 욕으로 쓰이며, ‘여성 혐오’를 둘러싼 분쟁이 지속되는 한국 사회에 때맞춰 도착한 예리하고 지적인 정치철학 에세이이다.

이졸데 카림 / 민음사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