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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신뢰 이동
[신간] 신뢰 이동
  • 송범석 기자
  • 승인 2019.04.29 11: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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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타임즈 송범석 기자] 지금으로부터 1000년쯤 전인 1005년의 일이다. 시칠리아에 사는 상인 섬헌 벤 다우드는 불만과 걱정을 잔뜩 토로하는 편지를 하나 써서 보냈다. 동업자 요셉 벤 아칼에게 전하는 편지였다. 내용은 이랬다.

“하루 빨리 이집트의 채권자들에게 수백 디나르를 갚아 달라”는 것이었다. 채무를 갚으라는 내부 최고장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당시 동업자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아서 섬헌은 매우 화가 난 상태였다. 당시 이집트 중산층의 한 달 생활비가 3디나르를 넘지 않았으니 상당히 큰돈을 채무로 지고 있었던 것인데, 그 지역의 다른 상인들에게도 채무불이행에 대한 소문이 퍼져 평판이 걷잡을 수 없이 나빠지고 있었다. 

 

이 편지들은 지금으로부터 약 150년 전에 이집트 푸스타트의 고대 유대교 회당 보관실에서 발견됐다. 편지들은 당시 상인들의 삶과 그들의 원거리 무역이 어떤 식으로 이뤄졌는지를 보여주는 훌륭한 사료가 됐다. 당시에는 지금보다 훨씬 더 ‘신뢰’가 밥을 먹여줬다.

가령 고대 카이로의 상인이 시칠리아 팔레르모에 직물과 향신료를 팔고 싶어 한다고 해도 직접 배를 타고 멀리까지 항해할 경우 리스크가 너무 크고 시간과 경비가 많이 들었다. 이런 때 이용할 수 있는 게 중개상의 존재였다. 중개상이 물건을 하역하는 일부터 현지 시장에서 판매하는 것은 물론 심지어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는 일까지 대행했다.

당시 사람들은 사기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중개상이 가격을 속이거나 판매대금을 빼돌리는 건 지금도 비일비재한 일이다. 게다가 문제가 발생해도 바로 클레임을 걸 수단이 당시에는 없었다. 너무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상인들은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중개상을 관리했을까? ‘제도’ 덕이다. 이들이 고안한 제도 덕분에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원거리 거래를 할 수 있는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중세판 ‘아마존’이라고나 할까. 

상인들은 같은 종교를 믿고 혈연으로 연결돼 있었다. 중개상들이 제대로 일을 하게 해야 한다는 동기도 동일했다. 이러한 ‘지역적 신뢰’가 사회적 자본이 된 것이다. 이를 사회적 연결망과 상호 호혜의 규범, 신뢰성이라고도 부른다. 당시 상인들은 집단적 제재 체제를 갖춘 연합체를 구성했고 긴밀하게 연결된 연합체에서 자주 서신을 교환하거나 대화를 나누면서 좋은 중개상과 나쁜 중개상을 가렸다. 마치 이베이에서 수많은 온라인 고객들이 평판이 좋은 판매자와 평판이 나쁜 판매자를 가리는 ‘구매 후기’를 쓰는 것과 동일한 구조였다.

그들은 사기꾼을 솎아내는 것보다는 정직하고 책임 있는 행동을 보상해주는 데 더 열을 올렸다. 그리고 만일 상인들에게 사기를 치는 중개상이 있으면 철저하게 그 사람은 조직 전체에서 배척을 당하게 됐다. 중개상들은 장기적으로 보면 거래를 성실히 유지해야 자신에게도 좋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이러한 역사는 ‘신뢰 거래’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했다.

신뢰 전문가이자 이 책의 저자인 레이첼 보츠먼은 ‘신뢰’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연결해주는 다리라고 정의한다. 모르는 것(미지의 대상)에 대한 불확실성을 없애주어야만 신뢰 도약이 이루어지고, 신뢰 도약이 이루어질 때 새로운 가능성이 창출되고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며, 새로운 시장과 네트워크가 가능해진다고 말한다. 저자는 알리바바가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에게 기술을 통해 어떻게 신뢰 도약을 이룰 수 있는지 보여준 훌륭한 사례라고 했다. 

저자는 이런 흐름 속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어떻게 실현되고 사람들의 신뢰를 얻어 성공하는지, 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는 무엇인지 살펴본다. 또한 그 속에서 소비자로서 개인은 어떤 것들을 고민해야 하고 우리 삶은 어떻게 영향 받고 받을 것인지를 함께 제시한다.

레이첼 보츠먼 지음 / 흐름출판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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