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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문장의 일
[신간] 문장의 일
  • 송범석 기자
  • 승인 2019.12.09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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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타임즈 송범석 기자] 위대한 문인은 색다른 독특한 문체를 구사한다. 이른바 전혀 다른 문장 형식이다. 어떤 문장가는 화려한 기교를 활용하지만 또 어떤 문장가는 질서와 통제된 담박한 문장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울린다. 

어느 정도 기교를 갖고 있지만 표면적으로는 담박하게 보이는 스타일을 대표하는 거장은 프랑스 수필가 미셸드 몽테뉴이다. 그는 <키케로에 대한 고찰>에서 “나는 아무런 계획 없이 자연스럽게 글을 쓴다. 펜촉의 첫 움직임은 그대로 두 번째 움직임으로 이어진다”고 선언한 바 있을 정도로 미리 해둔 생각이나 수사학적인 설계 없이 자신을 표현한다. 그는 병렬 구조 형식의 문장을 활용했는데, 준비 작업이나 격식이 전혀 없는, 툭 튀어나오는 느낌을 준다.

 

J.D.셀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의 도입부가 이런 식이다.

“우리 아버지나 어머니 혹은 실로 두 분 모두 그 일에 똑같이 의무로 엮었을 당시, 당신들이 나라는 자식을 잉태했을 때 무슨 일을 하려는 건지 미리 생각해두셨더라면, 두 분이 하던 행위에 얼마나 많은 것이 달렸는지 고려하셨더라면, 그래서 그분들이 이 모든 가능성을 저울질해 일을 진행하셨더라면, 나는 독자 여러분이 지금 보고 있는 인물과는 다른 인물이 되었으리라 확신한다.” 

이 글은 원망의 대상이 아버지인지 어머니인지도 명확하지 않다. 사실은 두 사람 모두에게 책임을 지우고 있다. 한 가지 생각은 다음 생각으로 이어지고 각각의 생각은 잠정적인 채로 마무리되지도 않는다. 그러다가 돌연 화자는 의지를 가지고 자신의 여러 생각을 그 자체로 멈춘다. 이런 맥락에서 그의 소설은 매우 불친절하다고도 할 수 있다. 독자들에 대한 배려 따위는 없다. 실제로 <호밀밭의 파수꾼>은 연속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경험의 흐름을 보여준다. 그래서 더 매력적이다.

이러한 형식의 대가는 단연 ‘버지니아 울프’이다. 울프의 <등대로>에 나오는 아래 문장은 이러한 형식을 집대성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 부분은 램지 부인이 방금 딸을 꾸짖고 난 상황에서 딸들의 반응을 담고 있다.

“그녀를 쳐다보기가 얼마나 무서웠는지, 찰스 탠슬리 때문에 엄한 꾸지람을 들은 딸들은 접시에서 고개를 들어 램지 부인을 쳐다보며 어머니와는 다른 인생을 살겠다는 불온한 생각을 속으로만 곱씹었다. 어쩌면 파리에서, 좀 더 자유분방하게 살아야지. 그저 남자들 시중만 들지는 않을 거야. 딸들 마음속에는 겸양이니 기사도니 하는 것들, 영국 은행, 인도 제국, 반지 낀 손가락과 레이스 같은 것들에 대한 무언의 회의가 일었다. 물론 이들도 이런 데에서 아름다움의 정수 같은 것을 느끼기도 했고, 그 때문에 젊고 팔팔한 가슴에 남자처럼 씩씩한 기운이 일어나, 이렇게 식탁 맞은편 어머니의 눈총을 받으며 앉아 있노라니, 어머니의 엄격함이, 극단적인 예의범절이 새삼 우러러 보였다.”

이 문장은 처음부터 ‘어머니와는 다른 인생’까지는 밀도 높은 종속 형식으로 진행이 되다가 ‘접시에서 고개를 들어 램지 부인을 쳐다보며’라는 어구는 세 딸들의 현재 행동이지만 ‘엄한 꾸지람을 들은’이라는 표현에 의해 또 자제되고 있다. 하지만 곧이어 ‘어쩌면 파리에서’라는 구절에 이르자 팽팽한 종속 구조가 갑자기 탁 풀린다. 이처럼 울프의 문장은 방향과 강조엄이 이동하는데도 불연속적이거나 일관성이 없어 보인다. 문장과 문장 사이는 어느 하나도 완결되지 않은 채 교향악을 떠올리게 하는 방식으로 빽빽하게 층을 이루어 움직이는 게 묘미이다.

이 책의 저자이자 미국을 대표하는 문학 비평가이자 법대 교수 스탠리 피시는 ‘문장은 모든 것’이라고 말한다. 문장은 생각을 담은 최소 단위이며 가장 핵심 단위이므로, ‘문장의 힘’은 상상 이상이다. 그러나 현실은 암담하다.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의 글쓰기 능력에 충격을 받은 그는 ‘문장 읽는 법’부터 ‘문장 쓰는 법’까지 문장에 관한 글을 쓰기 시작했고, 이 책이 그 땀의 결과물이다.

책은 2011년 출간 즉시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현재까지도 ‘지적 글쓰기’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필독서로 널리 읽히고 있다. 

스탠리 피시 지음 / 윌북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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