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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42명 사상자 낸 방음터널 화재가 일깨운 경각심
[기고] 42명 사상자 낸 방음터널 화재가 일깨운 경각심
  • 박근종
  • 승인 2022.12.30 13: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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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전, 소방준감ㆍ서울소방제1방면지휘본부장)
박근종 칼럼니스트(전 소방준감)
박근종 칼럼니스트(전 소방준감)

[한강타임즈] 제2경인고속도로 방음터널을 달리던 폐기물 집게 트럭에서 불이 나 42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어이없는 참사가 발생했다.

고속도로 차량 추돌에 이은 화재가 순식간에 터널 내로 번지면서 42명의 사상자가 발생해 인명피해가 컸다. 화재의 구체적인 경위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터널 안에서 탄 차량은 45대로 파악됐다.

이날 화재는 터널 내부를 달리던 폐기물 집게 트럭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불길이 시작됐다. 불은 금세 트럭에 실려있던 폐기물로 옮겨 붙으며 거세졌고 이윽고 방음터널 벽면과 천장을 태우기 시작해 터널 내 수백m 구간이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였고, 검은 연기가 치솟으면서 유독가스가 뿜어져 나왔다.

터널 천장과 벽면이 뜨거운 열기에 녹아 터지고 폭발음과 함께 불똥이 잇따라 아래로 뚝뚝 떨어지는 등 터널 내부는 아비규환의 상황이었다.

방음터널의 플라스틱 재질의 천장이 사실상 불을 확산시키는 ‘불쏘시개 역할’을 한 것이다. 실제 총길이 840m 터널 중 600m를 태우는 데 2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주목할 대목은 사망자 5명이 화재 트럭 인근에 있던 승용차 4대에서 발견됐다는 점이다. 이들은 삽시간에 번진 화마에 미처 대피하지 못하고 대부분이 유독가스를 많이 들이마신 탓에 숨진 것이란 추정이 나온다. 화재 초기에는 소방관과 장비가 접근하기 어려울 정도로 불길이 거셌다.

방음터널에는 통상 ‘폴리메타크릴산메틸(PMMA)’과 ‘폴리카보네이트(PC)’, ‘강화유리’, ‘접합유리’ 등이 쓰인다.

이번에 화재가 발생한 갈현고가교 방음터널은 ‘폴리메타크릴산메틸(PMMA)’이 쓰였다. 한국도로공사 도로교통연구원이 2018년 발간한 ‘고속도로 터널형 방음시설의 화재 안전 및 방재 대책 수립 연구’에 따르면 ‘폴리메타크릴산메틸(PMMA)’의 열분해 온도가 300℃ 위아래로 여러 가지 재질 중에서 가장 낮았다.

‘폴리메타크릴산메틸(PMMA)’은 흔히 ‘아크릴(Acrylic)’로 불리는데, 대표적인 열가소성 플라스틱 소재다. ‘폴리카보네이트(PC)’와 함께 국내 방음터널 자재로 자주 쓰이지만, 화재는 더 취약하다.

‘아크릴’의 인화점은 약 280℃로, ‘폴리카보네이트(PC)’ 약 450℃보다도 무려 170℃나 낮다. 연소할 때는 이산화탄소와 일산화탄소, 메탄 등의 유독가스도 발생한다.

또한, 화재 실험에서도 점화 후 약 400초 내외부터 아크릴이 녹아내리기 시작하는 등 실험에 사용된 아크릴, 폴리카보네이트, 접합유리 등 투명 방음판 중 화염 전파가 가장 빨랐다.

열분해란 소재를 고온으로 가열했을 때 일어나는 화학물질 분해반응으로 이는 ‘폴리메타크릴산메틸(PMMA)’가 상대적으로 낮은 온도에서도 불에 탈 가능성이 더 크다는 의미다.

방음터널에 불이 붙으면 터널 내부 온도가 480∼3,400℃까지 치솟는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화재 시 ‘폴리메타크릴산메틸(PMMA)’ 재질의 방음터널은 삽시간에 불쏘시개가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무엇보다도 아크릴은 화재로 인해 재료가 녹아 바닥으로 떨어진 뒤에도 바로 굳지 않고 지속 연소하는 특성이 있어, 방음터널 안에서 차량 화재가 발생했을 경우에 인접한 다른 차량에까지 옮겨붙어 2차 화재를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는 연구진의 지적이다.

유사한 사례가 2020년 8월 20일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나들목(IC) 고가차도에서도 발생했는데 이 방음터널도 ‘폴리메타크릴산메틸(PMMA)’ 소재를 썼는데 길이 500m 방음터널안 승용차에서 발생한 화재가 천장을 타고 번지며 무려 200m 구간이 소실됐다.

문제는 방음터널의 방재 기준이 2016년 국토교통부의 ‘도로터널 방재시설 설치 및 관리지침’이 개정되면서 처음 도입됐다.

기본적으로 소화설비, 자동화재탐지설비, 피난구 등을 갖춰야 한다. 하지만 방음 자재의 불연 기준은 없다. 합성수지로 분류되는 방음판은 합성수지에 요구되는 소방청 고시의 방염성능기준만 준수하면 된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그동안 방음터널의 방음재 불연 기준 문제를 수차 지적해왔다. 2019년 4월 한국방재학회에서 발표한 연구 보고서는 “방음터널의 화재 안전성과 관련된 설치 및 품질 규정은 전무한 실정”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그래서 이번 사고 역시 안전대책 미비가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방음터널은 도로를 터널처럼 덮고 있어 소음 저감 효과가 매우 높다. 주로 주택 밀집 단지나 도심 지역에 집중적으로 건설됐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방음터널은 전국 52곳에 설치돼 있다. 한국도로관리공사가 관리하는 고속도로에 18곳, 민자고속도로에 25곳, 국도에 9곳이 있다.

하지만 방음터널은 화재 대응에는 취약하다. 소방법상 일반 터널로 분류돼 있지 않아 소방설비를 갖추지 않아도 되고, 정밀 안전진단이나 시설물 안전진단 대상도 아니기 때문이다. 터널 구조지만 일반터널과 달리 환기 시설조차 없어 유독가스를 밖으로 배출하지도 못했다.

그러한데도 불구하고 방음터널은 향후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환경정책기본법」 및 「소음․진동규제법」에 의하면 도로변 소음 및 교통소음의 기준을 주간과 야간을 구분하여 일반주거지역 및 준주거지역 인근 도로변 소음 기준은 주간 65데시벨(db), 야간 55데시벨(db)이다.

그러나 도로 주변 건물이 고층일 경우 지붕 없는 방음벽만으로는 이런 소음 기준을 맞추기 어렵다. 당연히 민원이 제기되기 마련이다.

그 결과 2018년 기준으로 민자고속도로를 제외해도 13개의 방음터널이 설치됐다. 이후 수도권을 비롯해 도심을 통과하는 고속도로에 방음터널 설치가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현재 도로교통공사는 자체 규정을 개정해 새로 짓는 방음터널엔 ‘폴리메타크릴산메틸(PMMA)’을 쓰지 않지만 2019년까지 건설한 터널에 대해선 손을 놓고 있다. 이번에 화재가 발생한 제2경인고속도로 구간은 2017년 12월 개통한 민자도로다.

이번 사고는 방음터널 내 화재의 위험성을 일깨워주고 있다. 당국은 엄중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우선 사고를 서둘러 수습하고 사고원인과 문제점을 철저히 규명하여 맞춤형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방음터널에 불연 소재를 사용하도록 하는데 한국에는 관련 규정조차도 없다. 화재에 취약한 방음터널도 일반터널처럼 소방 규정을 적용할 수 있도록 법령을 정비해야 한다.

전국 52곳에 설치된 방음터널 대다수가 비상시 연기와 유독가스를 빼내고 신선한 외부 공기를 불어 넣는 제연 설비를 갖추지 않고 있는 것도 문제다.

또 방음터널은 일반 터널로 분류되지 않아 스프링클러 등 소방 설비가 없어도 되고, 안전점검 대상에서도 빠져 있다. 유사 사고의 발생 가능성이 큰 안전 사각이 아닐 수 없다. 당국은 화재에 강한 접합유리 사용을 권장하는 만큼 초기 비용이 들더라도 권장 사항을 따라야 함은 당연하다.

수도권 곳곳에 제3 신도시를 건설 중이어서 앞으로도 소음과 먼지를 차단하기 위한 방음터널은 끊임없이 지어질 것이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이제라도 방음터널의 방음판 불연 기준을 강화하고 반복적으로 같은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서둘러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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