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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국제시장 600만 돌파로 본 카투사 재평가
[칼럼]국제시장 600만 돌파로 본 카투사 재평가
  • 한승범
  • 승인 2015.01.02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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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타임즈] 카투사(KATUSA: Korean Augmentation to the US Army)는 주한미군 배속 한국군이다. 전 세계에서 오직 한국에만 있는 카투사 제도가 이제 64년째를 맞고 있다. 카투사는 대한민국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물론 우리나라에서 중요하지 않은 군부대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카투사가 가지는 의미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맥신코리아 대표 한승범
카투사는 1950년 8월 15일 이승만 대통령과 더글러스 맥아더 유엔군사령관의 비공식협정에 따라 창설되었다. 일본 후지산 아래 위치한 미 제7사단 신병교육대에서 단 1주일만 훈련 받은 카투사는 낙동강 전선에 긴급 투입되었고, 같은 해 9월 15일 무려 18,000명의 카투사가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하여 일거에 국군과 유엔군이 초기의 수세에서 벗어나 공세를 취할 수 있게 해주었다. 1950년 10월 1일 38선을 돌파한 뒤 파죽지세로 북진하여 통일을 바로 눈앞에 두게 되었다.

하지만 11월 말 불법 개입한 중공군으로 전세가 불리해지자 용맹한 카투사와 미 1 해병 사단은 자신의 10배에 달하는 12만 중공군의 남하를 지연시겼다. 이 전투가 미국 전쟁사에서 “역사상 가장 고전했던 전투”인 장진호 전투이다. 미 1해병 사단은 12월 24일 영화 ‘국제시장’ 첫 장면에서 나온 ‘흥남철수’를 하였다. 이 전투에서 수많은 카투사들이 희생된 것은 불문가지다. 6·25전쟁에 43,000명의 카투사가 첨전하여 무려 9,000명이나 전사하였다.

이에 대하여 버나드 샴포우(Champoux) 주한 미8군 사령관은 "용감하고 의연한 카투사는 적의 기습 남침을 막아내고 한국의 자유를 수호했다"며 "카투사의 헌신은 오늘날 한강의 기적과 같은 위대한 한국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유산"이라고 극찬한 바 있다.

지난 1일 ‘국제시장’은 누적관객수 600만 명을 돌파하며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천만 관객 고지가 바로 앞이다. 필자는 화제의 ‘국제시장’을 보고 3가지에 놀랐다. 우선 관객층이 젊다는 것이다. 어쩌면 젊은 층에게 진부하게 느껴질 만한 전통적인 가치를 담고 있는 ‘국제시장’에 젊은 세대가 열광한다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두 번째 놀란 것은 영화의 완성도였다. 흔히 보수적인 가치를 담은 영화들이 흥행에 번번이 실패한 것은 바로 완성도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즉, 재미와 감동이 적으니 아무리 훌륭한 가치를 담고 있어도 관객이 외면하는 것이다. 하지만 ‘국제시장’은 전혀 달랐다.

마지막은 흥행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들을 포기한 윤제균 감독의 결단이었다. 역대 흥행 한국영화를 분석해보면 ‘반미’와 ‘대한민국 정통성 부정’이란 키워드를 담고 있다. 영화에서 미국과 미군을 ‘악의 축’으로 설정하고, 북한의 ‘인간적인 얼굴’을 부각시키는 것이 마케팅 차원에서 도움이 된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또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훼손하고 경제개발을 폄훼해야 ‘의식있는’ 예술인인양 대접받는 게 한국 영화계의 천박한 현실이었다.

이렇게 미국이라면 뭐든지 반대하고 혐오감을 표출하는 대한민국에서 ‘반미’라는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고 ‘흥남철수’라는 착한 이미지의 미군을 표현한 것은 영화 마케팅 측면에서 위험한 요소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면서도 영화 전체에 정치적인 요소를 철저히 배제하고 ‘아버지’라는 가족애만을 담고 있다.

급진적인 진보 가치를 가진 사람들은 이런 모습이 참을 수 없는 것이다. 특히 종북주의자들은 ‘착한 미군’과 우리나라 아버지들의 ‘희생과 사랑’을 도저히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에게 미군이란 무고한 양민들을 학살하고, 대한민국의 성공한 아버지들은 서민들을 착취하여 부만 늘린 타도의 대상이어야만 한다. 그래야 종북주의자들이 존경해 마지않는 북한 김 씨 3대세습을 미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2002년 가을의 효순미선 반미시위와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를 거친 대한민국은 이제 반미 선전선동에 내성에 생겼다. 무조건적인 반미에 넌더리가 난 것이다.

필자는 93년 유럽여행을 갔다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우연히 한 교포 여대생을 만나 집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한국어에 서툰 딸은 독일어로 말하고, 독일어에 익숙지 않는 부모는 한국어로 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서글픈 감정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영화에서처럼 광부와 간호사로 독일에 온 부모는 딸을 독일 명문대에 입학시켰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부모들이 다 그랬다. 우리의 부모들은 피눈물이 나게 못살아도 자식만큼은 호강시키기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친 것이다. 영화를 관통하는 사상이 바로 “이 고생을 우리 후손이 아니고 우리가 해서 다행이다”인 것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옆자리의 한 청년은 펑펑 울었다. 이 눈물이 얼마나 무서운지 북한을 추종하는 사람들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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