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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 신화 이룬 김태연 회장의 영화 같은 인생 이야기
실리콘밸리 신화 이룬 김태연 회장의 영화 같은 인생 이야기
  • 레이디경향
  • 승인 2008.06.16 03: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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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연 회장"스스로 훌륭한 브랜드가 되어야 해요"
실리콘밸리 신화 이룬 김태연 회장의 영화 같은 인생 이야기 인터뷰 장소에 나타난 김태연 회장은 기자들의 명함을 받으며 꼭 기억하겠다는 듯 이름을 힘주어 읽었다. 그리고 인터뷰 내내 눈을 맞추며 이름을 불렀다. 악수는 손을 감싸 쥐며 가볍게 흔들면서 당당하게 해야 한다고 일러주기도 했다. 행동 하나하나에 자연스레 녹아 있는 다정스러운 자신감은 그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그 당당함과 진실함은 아마도 오늘의 그를 만든 비결이었을 것이다. 여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받았던 냉대, 성공의 밑거름이 되다
정월 초하루 자시, 제사를 준비하고 있던 김씨 문중 사람들은 종손 며느리의 진통에 제사를 늦출 수밖에 없었다. ‘세상을 뒤흔들 장군감’을 기다리던 식구들의 기대는 아이의 울음소리에 사그라졌다. 아이를 받아낸 할머니는 “김씨 집안 다 망했네”라며 부엌에서 끓고 있던 미역국을 솥째 내동댕이쳤고, 태어난 아이가 여자임을 확인한 할아버지는 조상 앞에서 “제가 뭘 잘못했기에 이런 큰 벌을 주십니까”라며 통곡을 했다.

세계를 대표하는 여성 리더로 인정받고 있는 김태연 회장(62)은 그렇게 태어났다. 아무도 축복해주지 않았던 출생의 순간은 낙인이 되어 자라는 내내 그를 힘들게 했다. 가족들의 싸늘한 시선은 상상할 수도 없는 구박과 냉대로 이어졌고, 술주정이 심했던 아버지에게는 무관심과 폭력을, 한 맺힌 어머니에게는 원망을 받아야만 했다. 친구들과 주변 사람들도 그를 ‘재수 없는 아이`’라고 부르며 무시하기 일쑤였다. 그의 어린 시절은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고 한다.

“나는 사람들한테 손가락질을 참 많이도 받았어요. 내 눈물을 채우자면 한강도 넘칠 거예요. 항상 ‘너는 안 돼’라는 말을 듣고 자랐어요. 정월 초하루에 여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요.”

하지만 지금 그는 많은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위치에 섰다. 그는 반도체 장비 회사인 라이트 하우스(Lighthouse Worldwide Solutions)를 비롯해 모닝 플라넷, 데이터 스토어X, 엔젤힐링 등 6개 회사를 소유한 TYK 그룹의 회장이자 태권도 도장인 ‘정수원’을 운영하는 태권도 8단의 여성 최초 ‘그랜드마스터’다. 라이트 하우스는 실리콘밸리가 벤처 위기로 무너져가던 때에도 성장을 거듭해 동종 업계 1위의 실적을 기록하고 있는 우량 회사이며, 그가 진행하는 ‘태연 김 SHOW’와 직접 출간한 책들은 엄청난 호응을 얻었다.

“사람들은 제게 ‘어떻게 그런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느냐’고 묻습니다. 그리고 ‘참 힘들었겠어요’라고 얘기하죠. 네. 정말 어렵고 고통스러웠어요. 하지만 좌절과 시련은 누구나 겪게 되어 있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지 않으면 쓰러져버려요. 인생은 전쟁이니까요. 저도 어느 순간 문득 깨달았습니다. 나의 무기는 ‘눈물을 알았다’는 것이라는 점을요.”

아픔을 겪었고 외롭고 힘들었지만, 그 시간들은 김태연 회장에게 밑거름이 되었다. 눈물을 흘렸기 때문에 ‘정말 해야겠다’는 생각을 더 절실히 했고 탄탄하게 자신을 갖추려 노력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꿈과 공상을 구별하지 못해요. 흔히 공상을 꿈이라고 생각하고 좇으려 하는데 그건 틀렸어요. 냉정하게 판단해서 꿈을 세울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꿈을 정했으면 레이저를 쏘듯 집중해서 파고들어야 해요.”

‘할 수 있다’는 도전 정신은 인생의 필수 준비물
그의 이름을 이야기할 때면 자동적으로 따라붙는 말이 있다. 바로 할 수 있다는 ‘Can Do’ 정신. 지난 2001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도 ‘CAN DO쇼’를 열어 감동을 준 바 있다. ‘김태연=Can Do’라고 연결될 만큼 고유명사처럼 사용된다.

“저는 버스를 탈 줄 알고, 전화를 걸 줄 알고, 화장실에 갈 줄 알고, 입에 밥을 떠 넣을 줄 아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인생을 운전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봅니다. 왜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거죠? 꿈을 가지고 마음속에 그리면서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성공할 수 있습니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포기할 줄 모르는 도전 정신은 ‘재수 없는 가시나’였던 김태연을 ‘한국을 빛낸 55인’ 중 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맨몸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사람들을 사귀고, 사무실을 겸한 방 한 칸으로 잘 알지도 못한 사업에 뛰어든 일화들은 유명하다.

“멸시와 배척은 한국에서만 겪었던 것이 아닙니다. 스물두 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오게 되면서 동양인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버몬트에서의 삶이 시작됐죠. 영어 한마디 못하는 조그만 동양 여자아이를 누가 좋아했겠어요? ‘내 이름은 김태연입니다. 친구가 되고 싶어요’라고 쓴 종이를 들고 1백 채의 집을 돌아다녔어요. 딱 세 군데서 문을 열어주더라구요. 끊임없이 두드린 결과, 사람들이 마음을 열어줬어요.”

사업 또한 쉽지 않은 일이었다. 보통 이민자들은 식당이나 세탁소, 미용실 등을 운영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는 소프트웨어 개발에 뛰어들었다. 신앙의 힘으로 반드시 잘될 거라는 믿음을 갖고 출발했지만 주변에서는 다들 ‘미쳤다’며 손가락질했다. 집까지 팔아 돈을 마련했고 근처 식당에서 개 먹이로 쓰라고 공짜로 주던 소 뼈다귀를 매일같이 얻어와 수제비를 만들어 먹었다.


1 인터뷰 도중 김태연과 아들들이 ‘아리랑’과 ‘쾌지나 칭칭나네’를 들려줬다. 2·3 15일 열린 ‘김태연 SHOW’ 중에서. 할리우드에서 활동 중인 프로듀서가 연출을 맡았고, 강연에 연주·노래·패션쇼 등이 접목된 최초의 예술강연(ARTLECTURE)이었다.
 
“오늘의 이 시간을 기대하면서 고생과 동고동락했죠.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에 들어가라’는 말처럼 중심으로 들어가야겠다 싶어서 무작정 실리콘밸리로 옮겨 부딪치기 시작했어요. 문제는 나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었어요. 계약을 할 때도 다른 업체에서는 10만 불에 체결되는 걸 우리에게는 70만 불을 요구하는 거예요.

그들은 제가 해내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 거죠. 하지만 저는 ‘좋아, 이번은 내가 손해 보마’라는 생각으로 승낙해요. 그리고 최고의 기술과 정성, 믿음을 보여주는 거죠. 지금 당장 눈앞의 것만 계산해서는 사업을 할 수 없어요. 멀리 내다보고 판단한 뒤 공격적으로 움직여야 해요.”

도전이라고 해서 무조건 밀어붙이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내실을 다지고 정성으로 모든 일을 대하는 것이 기본이다. 김태연 회장은 자신도 ‘상품’임을 항상 잊지 않는다고 한다. 한번 보면 누구나 그를 기억하게 만드는 화려한 외모 또한 ‘인생 전략’이다.

“살면서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은 ‘상대방의 가슴에 불을 지를 수 있느냐’ 하는 거예요. 어떻게 하면 상대의 시선을 잡아 끌 수 있을까 고민해요.”

내면을 보여줄 기회를 얻기 위해 우선 상대방에게 자신을 각인시키려면 특징적인 외모만큼 좋은 것도 없다. 이렇다 할 배경도 없는 조그만 동양 여자로서는 보통 사람들과 동일한 출발선에 서는 것조차 어려웠기 때문이다. 화려한 옷차림과 짙은 화장은 어떻게 보면 필수적인 선택이었을지 모른다.

“사람들에게 제일 먼저 듣는 말이 ‘Are You Chinese or Japanese? (당신 중국인이에요? 아니면 일본인?)’였어요. 그들 눈에는 다들 비슷비슷해 보이니까 그랬겠지만 그 소리가 정말 듣기 싫더라구요.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죠. 머리도 올리고 화장도 하고. ‘튀는’ 외모 덕분에 다들 중국인도 일본인도 한국인도 아닌 ‘김태연’으로 기억해요. 외모에 대한 질문을 하면서 이야기를 먼저 건네기도 하구요. 만나는 사람들, 혹은 그 자리의 성격에 맞춰서 옷을 입어요.”

그는 인터뷰 자리에 꽃이 수놓인 연두색 정장을 입고 나왔다. 인터뷰에 임하는 오늘의 ‘전략’을 물었다.
“초록색을 기본 컬러로 선택한 것은 편안한 마음으로 독자에게 다가가고 싶어서예요. 오랜만에 친정(한국)에 왔으니 잘 보이고 싶거든요(웃음). 이 꽃은 국화예요. 내 동생이 세상을 떠나면서 ‘국화 같은 누나, 내 몫까지 잘살아줘’라고 글을 남겼어요. 내가 이렇게 당당하게, 누가 돌봐주지 않아도 잘 자라는 국화처럼 씩씩하고 멋지게 잘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인터뷰를 통해 동생도 봤으면 해서 입었습니다.”

그가 화장과 옷차림만으로 외양을 가꾸는 것은 아니다. 올해로 62세가 됐지만 말하기 전에는 절대로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체력과 활기를 가졌다. 태권도로 다져진 몸은 군살 하나 없이 탱탱하고 손이나 목도 주름 하나 찾아볼 수 없다.

“운동은 종류 상관없이 두루 좋아해요. 태권도야 말할 것도 없고 축구, 야구, 탁구 다 즐겨요. 도전을 즐기기 때문에 스카이다이빙 같은 것도 즐겨요. 그리고 늘 긍정적으로, 계획적인 생활을 유지하려고 애쓰죠.”
서로의 가슴속 상처를 품어 안으며 만들어진 가족의 인연
엄청난 부와 성공을 거뒀고 후회 없이 모든 일에 도전해왔던 그도 사실 아쉬운 점은 있다.
“어렸을 땐 다들 나보고 못생겼다고 해서 그런 줄만 알았고 또 너무 바쁘게 살다 보니 제대로 된 연애 한번 못해봤어요. 연애를 하면 어떨까 궁금하네요. 지금이라도 나를 사랑해주는 멋진 남성이 나타난다면 좋겠지만…. 나는 연애도 열정적으로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 용기 있는 남자가 없네. 하하.”

이민 초기, 주변의 권유에 떠밀려 한 미국 남자와 결혼을 했었다. 하지만 서러웠던 어린 시절만큼 남편을 비롯한 시댁 식구들의 인종 차별과 멸시 또한 매서웠다. 그 시절 그는 두 번이나 유산을 했고 의사로부터 ‘장례 치를 준비를 하라’는 선고를 받을 만큼 죽을 고비도 넘겨야 했다.

결혼생활은 그렇게 끝이 났지만 그의 곁에는 소중한 자녀들이 있다. 그에게 태권도를 배우다 양자가 된 6남 3녀. 그를 만나기 전까지는 가족에게 버림받고 마약과 폭력, 섹스로 얼룩진 생활에 빠져 있던 아이들이었지만 김태연은 이들이 자신과 비슷한 상처를 갖고 있다는 생각에 진심으로 보듬었다. 따뜻한 정과 엄격한 교육을 받으며 부모와 자식의 인연을 맺은 자녀들은 이제 그의 가장 큰 보물이 되었다.

자녀들은 든든한 사업 파트너로, 능력 있는 직원으로, 유쾌한 아들로, 다정한 며느리로 모습을 바꿔가며 언제나 그의 곁을 지키고 있다. 그 또한 인생에서 가장 큰 성공이 ‘어머니’란 이름을 얻은 것이라고 말할 만큼 자녀들을 아낀다.

“얼마 전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나는 자리에서 우리 아들이 ‘햇볕정책’에 대해 질문을 했더니 김 전 대통령께서 놀라시더라고요. 저는 아이들에게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 음식까지 가르쳤어요. 내가 한국인이니까 아이들에게는 어머니의 나라잖아요. 한국의 효를 배워서일까요? 정말 놀랄 만큼 효자들이에요.”

눈물겨운 기억만 가득한 한국 생활이었지만 김태연은 한국에 대한 애정이 대단하다. 뿌리는 잘라낼 수 없기 때문이란다. 미국에서 큰 성공을 거둔 만큼, 외국인들에게 쉽게 어필할 수 있는 이름이 있을 법도 한데 김태연에게는 외국 이름이 없다. 덕분에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태연’이라는 이름을 불러야 한다. 그리고 그가 한국 사람임을 꼭 한 번 머릿속에 떠올리게 된다.

앞으로 그의 꿈은 ‘김태연 같은 사람을 많이 키워내는 것’이다. “내가 잘났으니까 나 같은 사람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게 아니에요. 나의 ‘성공’이 아니라 나와 같은 ‘신념’을 가진 사람을 키우고 싶은 거죠. 고통스럽고 힘들어도 포기하지 말고 이겨나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 어려운 아이들과 특히 여성들에게 힘을 주고 싶어요. 엄마가 아이를 키우잖아요. 할 수 있다는 신념과 인내를 심어줄 수 있는 것은 엄마니까 여성들의 역할이 무척 크죠.”
사회 교육 사업에 힘을 쏟고 싶다는 그의 삶은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훌륭한 교과서다. 시련과 좌절을 딛고 끊임없이 도전한 김태연 회장의 성공을 보며 사람들은 희망과 용기를 얻는다.

“스스로 훌륭한 브랜드가 되어야 해요. 자기만의 생각에 깊이 빠지지 말고 유연한 사고로 어떤 일이든 포기하지 않으면서요. ‘그’도 할 수 있고 ‘그녀’도 할 수 있는데 나는 왜 못해요? 할 수 있어요! Can Do!”

글 / 이연우 기자 사진 / 인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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