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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노인과 꼰데
[기고]노인과 꼰데
  • 이영진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6.24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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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타임즈]노인은 오랜 세월을 살면서 인생의 지혜를 터득한 사람을 상징하는 반면 꼰데는 나이가 많은 남자를

이영진(전)한양대 특임교수/보건학박사
이영진(전)한양대 특임교수/보건학박사

 

가리켜 학생이나 청소년들이 쓰는 비하하는 은어다. 요즘에는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직장상사나 나이많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꼰데 정치라는 말이 정치권의 화두다. 야당의 당 대표로 30대가 선출되자 이변을 넘어서 가히 혁명수준 이라는 평가로 기성 정치권에 대한 젊은층의 일대반란이 시작되었다며 여당도 긴장하는 모습이다. 국정농단이라고 시민들이 반발한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정권의 주된 지지층인 젊은층이 다시 시대교체·세대교체를 요구하는 다른 시민혁명을 외치는 소리에 깜짝 놀라 당황할수 밖에 없다. 혁명은 또 다른 혁명에 의해서 무너진다는 것이 역사적 교훈이다.

“젊은 것들이 뭘 알아!” 하며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는 노인세대와 나이 값도 못하는 노인들 이라는 젊은세대간에 충돌은 이미 오래전부터 세대간 소통의 부재에서 촉발된 예고된 것이라는 평가다. 사소한 갈등이라도 유발되면 논리적인 대화와 타협 보다는 ‘너 몇 살이냐?’ 하고 나이부터 확인하고 어리면 반말부터 하는 풍조에 젊은 세대들은 쉽게 이해하기 어려워 ‘에이 그러려니!’ 하고 체념한 채 참아왔던 것을 이제는 더 이상 두고 볼수 없어서 대폭발한 것이다.

‘꼰데질’ 사건이 국회에서 터졌다. 온 국민은 방송을 통해서 우리의 저질정치 수준을 보고는 깊은 한숨을 내쉰다. 지난 5월에 국회 본회의에서 정의당의 29살 여성의원은 민주당의 54세 남성의원이 “야! 어디서 감히” 라는 발언을 두고 꼰데질을 했다며 “고성에 삿대질” 까지 하는등 거친 설전을 벌여 양대 정당간의 감정싸움으로 비화된 장면이 보도되고 그 후에 여성의원은 나이어린 제가 우스웠던 건가 라고 해명하고 남성의원은 거친 돌발행동을 했다고 해명하는 등 낙후된 정치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패거리 정치문화의 폐습 때문으로 이러한 유사한 사건은 수없이 많다. 욕설에 반말에 상대의 발언에 무조건적 야유나 벌이는 등 대화, 타협을 위한 논리적인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소속정당의 지침에 따라 움직이는 꼭두각시 처럼 일사불란 하게 행동하는 모습을 보면 마치 조폭영화를 보는 것 같다. 국회의원 선거때면 영·호남 등 특정지역의 경우 인물평가는 없고 사회에 해악을 끼친 전과자라도 공천만 받으면 무조건 당선 된다는 식이며 지역민도 양당정치 구조상 인물을 보고 선택하지 않으니 저질정치의 악순환은 수십년째 계속되어 온다. 조선왕조 사화와 당쟁을 유발하고 임진왜란, 병자호란에 삼전도굴욕까지 당했어도 변하지 않는 패거리 파벌싸움을 두고 아주 오랜 전통을 지켜왔다고 칭찬해야 하는 것일까

“노인과 바다”가 아니라 “노인과 꼰데”다.  나는 어디에 해당하지 자문자답을 해본다. 우리 사회는 학연, 지연, 혈연으로 ‘끼리끼리’ 뭉치고 ‘우리가 남이가’ 라며 집단의 단합을 외치는 문화에 익숙하고 ‘성은이 망극하옵니다’만 열심히 외치면 잘 살수가 있는데 굳이 용기있게 “아니요” 라고 나설 필요가 없다는 패거리 집단문화다. 앞장서서 상대방을 잘 헐뜯는 소위 씹는 소리를 해대면 한자리 마련해 주기 때문에 연예인도 서로 경쟁적으로 나서서 상대편 헐뜯는 소리를 해대면 어김없이 한자리를 내어주는 것을 보노라면 이런 꼴을 보고도 참고 지내면 꼰데인 것일까

대화와 타협보다는 명령과 복종이 우선이고 획일성이 강조되니 다양성과 창조성은 실종된다. 인재를 등용하려고 삼고초려를 하고 탕평인사를 한다는 말은 허울좋은 명분이고 낙하산인사에 밀실공천으로 친박계니 친문계니 대깨문 이니 하는 말이 통용되고 젊은층은 금수저, 흙수저, 갑질이라는 은어를 사용하면서 저항해오던 것이 이번에 대폭발한 것이다. 능력위주의 사회를 만들겠다는 것은 선거때면 公約이고 선거철만 지나면 空約인 것을 한두번 보아온 것이 아닐진대 더 이상 속지 않겠다는 심산이다.

30대가 야당의 당 대표로 선출된 이후 집단의 단합을 외치는 용광로가 아닌 각자의 개성을 가지고 공존할 수 있는 비빔밥론 발언에 속이 후련하다, 묵은 때가 씻기는 것 같다는 반응을 보이는 것은 젊은층만이 아닌 노인세대 마저 공감한다. 양푼이 비빔밥이 생각난다. 찌그러진 큰 양푼에다 보리밥을 담고 노인세대가 좋아하는 각종 나물과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고기,햄 등을 잘 버무리면 온 가족이 함께 모여서 맛나게 먹을수 있던 추억이다. 특히 비빔밥에 마지막에 넣는 고추장이 되겠다는 30대 당 대표의 발언이 와 닿는 이유는 이제사 정신을 차린 것인지 아니면 꼰데 에서 탈피하려는 몸부림인가. 노인과 꼰데는 결국 생각의 차이일 뿐 나이에 차이가 있는게 아니다.

노인세대는 자기 잘난 맛에 변하지는 않고 요즘 젊은 것들이 뭘 알아! 하며 무시하는 태도를 버려야한다. 노인세대들이 앞장서서 자식들은 잘 키우려고 선진국에 유학을 보내서 더 많은 것을 배워 오라고 돈까지 대어주었으니 더 많이 아는 것이 맞고 이제는 믿고 맡겨야 한다. 다행스러운 것은 비빔밥론이다. 아무리 재료가 좋아도 어머니의 손맛처럼 맛깔나는 비빔밥이 되기를 기대한다. 노인과 젊은세대가 잘 버무려 지면 맛깔나는 세상이 될것이다. 그래서 노인과 꼰데 중 노인으로 100세 시대를 마무리 해야 한다. 

이영진 칼럼니스트

(전)한양대 특임교수/ 보건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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