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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실향민 어르신의 애환 서린 지팡이
[기고] 실향민 어르신의 애환 서린 지팡이
  • 이영진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7.08 17: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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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진(전)한양대 특임교수/보건학 박사
이영진(전)한양대 특임교수/보건학 박사
이영진(전)한양대 특임교수/보건학 박사

[한강타임즈] “내 죽거덜랑 내가 쓰던 헌 지팡이들은 모두 버리지 말고 싸가지고 가서 내 고향땅 여기저기에 놓아두거라 죽어서라도 그 지팡이를 짚고 다니면서 고향땅 이곳저곳을 구경해야 내 한이 풀리겠구나”

어머니가 허공을 멍하니 바라보며 무심코 던지신 이 한마디가 자식들의 가슴을 쾅! 하고 내리친다.

첫번째 지팡이를 짚고 다닐때만 해도 머잖아 내 고향을 갈수 있겠지 생각을 했었는데 어느덧 세월이 흘러 네번째 지팡이를 사게 되었다며 설마 이 지팡이가 닳고 닳을 때까지도 내 고향을 가지 못하지는 않겠지? 하시면서 92세 실향민이신 어머니는 마지막 잎새에 다시한번 희망을 걸어본다.

자식들하고는 내 고향 어릴적 이야기를 할 수가 없잖아 그래서 몸이 아무리 아파도 지팡이를 짚고 지하철에 마을버스를 타고 이북오도청에 가야만 했지 고향 언니, 오빠, 동생들하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돌아오면 기분이 좋아져 내 어릴적 동네에서 놀던 추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자식들은 어머니가 쓰시던 지팡이가 닳고 닳아서 쓰지도 못하는데 왜 버리지 않고 모아두면서 궁상을 떠시나? 생각했다.

어머니의 애환 서린 지팡이를 그저 못쓰게 된 지팡이로만 생각했고 아픈 몸을 이끌고 지팡이에 의지 한 채 아주 힘들게 이북오도청을 다니고 고향사람 모임에 악착같이 참석하실 때만해도 “왜 저러실까?”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제서야 깨닫는다.

명절때면 아버지 고향은 자식들이 선물을 바리바리 싸들고 갔었지만 이북이 고향인 어머니의 고향은 수십년 째 한 번도 가보지 못했어도 자식들은 어쩔 수 없다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자식들이 이렇게 무심한데 그동안 어머니의 마음고생은 얼마나 심했을까 생각하니 또 한 번 울컥해 진다.

1.4 후퇴 때 피난민 대열 속에서 이북에 남아있는 부모형제 가족의 이름을 수없이 불러봐도 대답이 없다면서 내게 가장 잘 대해준 오빠의 이름을 나즈막히 불러보면서 옆에 있는 카셋트에 “불효자는 웁니다” 테이프를 틀어놓는다.

불러봐도 울어봐도 못 오실 어머님을 원통해 불러보고 땅을 치며 통곡해요 다시 못 올 어머니여 불초한 이 자식은 생전에 지은 죄를 엎드려 빕니다. 아! 이 노래는 바로 어머니의 노래 였구나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고향 이야기를 수없이 하시면서 내가 혹시 잘못되어도 자식들이라도 꼭 기억해 두어야 한다고 했는데 정작 자식들은 아무것도 기억 나는게 없고 우리도 먹고 살기가 바쁘다는 핑계로 어머니의 말씀을 그냥 흘러 들었다.

우리 부모님은 남남북녀가 만난 것이라고 친구들에게 자랑삼아 말하곤 했었는데 남몰래 흘린 어머니의 눈물은 미처 헤아리지 못했으니.....

살아실제 孝를 다해야 하건만 어머니가 진정 바라는 건 고향방문인데 자식들은 아무것도 할수 없음에 그저 하늘만 쳐다보고 있네. 내 죽거덜랑 고향 땅에 내가 쓰던 지팡이를 이곳저곳에 놓아두어야 여기저기 다녀볼 수 있다는 말씀에도 자식들은 어머니의 어릴적 동네를 모르니 어찌할까나 동네 오빠,동생들 이라도 오래도록 살아계셔야만 하는데... 생각하니 그저 발만 동동 구른다.

실향민들의 지팡이에는 애환이 서려 있다.

보통사람들이 거동이 불편해서 사용하는 그런 지팡이가 아니다. 피난민 시절엔 두발로 걸어서 내려왔는데 이제사 고향땅에 올라가려니 지팡이가 필요하고 그 지팡이에 담겨진 긴 세월의 흔적 속에 한 맺힌 설움까지 더하니 이제라도 자식들은 헌 지팡이를 꺼내어 깨끗이 닦고 삼베에 고이 싸서 소중히 보관하리라.

실향민 어르신의 헌 지팡이는 애환이 서려있어 버려야 하는 것이 아니다.

이영진 칼럼니스트

(전)한양대 특임교수/ 보건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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