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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없는 시대 꿈을 강요당하는 젊은이들’.. 도서 ‘희망난민’ 출간
‘희망없는 시대 꿈을 강요당하는 젊은이들’.. 도서 ‘희망난민’ 출간
  • 이지연 기자
  • 승인 2016.03.29 17: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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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타임즈 이지연 기자] 한때는 꿈을 이룰 수 있는 시대였다. 모두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경제 성장에 취해 더 원하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굳게 믿었다. 황금시대의 주역이었던 젊은이는 방황하며 혁명을 도모하기도, 대기업에 입사해 가정을 꾸리기도 했다. 그때는 모든 게 가능했고 어떠한 목표든 마음만 먹으면 이룰 수 있었다.

그러다가 모든 게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사회 변혁이나 고뇌는 사치가 됐고, 취직과 결혼, 평범함 삶조차 가닿을 수 없는 꿈이 됐다. 경제 성장이 멈춘 자리에서 모두가 길을 잃고 말았다. 사회는 여전히 “노력하라, 꿈을 가져라, 하면 된다”라고 떠들어 대지만 실상 선택할 수 있는 건 냉엄한 인정 투쟁과 불투명한 미래뿐이다.

앞으로 우리 사회는 젊은이들에게 계속 허황된 꿈만 꾸게 할 것인가, 아니면 꿈을 이룰 수 세상을 제공할 것인가? 더 나은 미래는 세대를 넘어 모두가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다. 젊은이에게만 지나치게 많은 걸 기대하지 마라. 그들을 꿈에서 깨어나게 하라! 현실과 희망의 격차로 고통스러워하는 ‘희망 난민’은 바로 우리 사회의 문제다.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로 한국에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후루이치 노리토시의 데뷔작 ‘희망 난민’이 민음사에서 출간됐다. 이 책은 저자가 사회학을 선택한 이래 줄곧 천착해 온 ‘젊은이 문제’를 심도 있게 파고든 첫 결실이다.

그는 도쿄 대학교 대학원 총합문화연구과 석사 논문으로 제출한 연구물을 바탕으로 ‘희망 난민’을 세상에 내놓았고, 주요 언론은 물론 학계와 대중으로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 특히나 이 책 끝부분에 붙은 도쿄 대학교 교수 혼다 유키의 냉철한 ‘해설 혹은 반론’은 ‘희망 난민’을 둘러싼 논쟁에 불을 지피기도 했다.

‘희망 난민’이 화제에 오른 건 국제 NGO 단체 ‘피스 보트’(세계 평화 실현하는 세계 일주 크루즈)를 통해 현대 일본의 젊은이 문제를 절묘하게 규명해 냈기 때문이다. ‘희망 난민’이 출간될 당시만 해도 젊은이 연구는 학력, 노동, 범죄, 서브컬처 등의 문제와 얽혀 이뤄져 왔을 뿐, 세계 평화나 환경 보호를 부르짖는 NGO 단체 등 사회 운동의 차원에서는 좀처럼 다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껏 젊은이는 사회 변혁의 주체로 받아들여져 왔고, 자기 찾기를 위한 방황은 당연한 미덕으로 간주돼 왔다. 하지만 저자는 근대 이후 경제 성장이 멈춰 선 오늘날, 젊은이들에게 쏟아지는 막중한 기대에 위화감을 느낀다. 열악한 노동 환경과 불투명한 미래의 기로에서 외딴 섬으로 변해 가는 젊은이들을 위로해 주는 돌파구로서 자주 거론되는 새로운 공동체와 사회 운동 커뮤니티. 저자는 이런 것들이 오늘날 ‘젊은이 문제(빈곤과 고독)’를 해소해 줄 만병통치약처럼 거론되는 사회 분위기에 의문을 제기한다.

희망 고문을 재생산하고 꿈만 좇게 하는 공동체가 노동 시장의 변두리에 놓인 젊은이들에게 어떠한 혜택을 줄 수 있을까? 피스 보트가 제공하는 세계 여행과 사회 변혁을 요구하는 구호는, 현재 젊은이들의 목을 조이는 빈곤과 외로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저자는 졸업, 취직, 결혼 등으로 이어지는 근대적 인생 경로에서 제 기능을 상실한 통과 의례와 자아성찰의 과정을 되짚어 보며, 오늘날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공동체의 실체를 낱낱이 파헤친다.

한 사회의 축소판이자 더 나은 미래를 요구하는 피스 보트 커뮤니티에서 114일 동안 집요하게 파고든 현장 조사 끝에 저자가 마주한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저자가 분석한 대로(한국어판 서문) 한국은 일본보다 희망이 넘쳐 나는 나라다.(일본 내각부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젊은이들은 일본이나 스웨덴의 젊은이들보다 훨씬 희망을 품고 있다.) 고령화가 급격히 진행된 일본에 비해 한국은 확실히 젊은 편이며, 청년들 또한 여전히 가슴에 꿈을 품고 더 나은 미래를 바라고 있다.
하지만 저자 후루이치 노리토시는 ‘그렇기 때문에’ 한국이 더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희망 난민’은 말 그대로 현실과 희망의 격차로 고통받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희망으로 가득 찬 사회에,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엄청난 수의 희망 난민이 생겨나고 말 것이다.

실제로 한국은 지난 수년 동안 최악의 청년 실업률을 갱신하고 있으며 불안정한 노동 환경으로 ‘헬조선’, ‘흙수저’ 담론까지 대두하고 있다. 이렇듯 희망과 현실의 간극이 점점 더 벌어질수록 한국은 ‘희망 난민 수용소’가 될지도 모른다. 최근 한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소수자나 약자, 동물을 대상으로 한 범죄 및 인터넷을 통한 혐오 발언이 증가하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대책 없이 꿈만 부추기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끝내 꿈을 성취하지 못한 젊은이들이 자존감을 회복하고 인정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혐오 단체나 사이비 종교에 쉽게 매료되기 때문이다. 이런데도 오직 젊은이에게만 책임을 전가하고, 희망찬 미래를 촉구할 것인가, 그들을 자기 계발의 늪에 빠뜨려 허우적대게 할 것인가?

더 나은 사회는 젊은이뿐 아니라 사회 구성원 전체가 함께 일궈 가는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는 한국도 예외일 수 없다. 일본의 선례를 반면교사로 삼아, 우리 사회는 ‘희망 난민’을 양산해 내지 않기 위해 미리 고민하고, 장차 행동에 나서야 할 것이다. 이것은 젊은이들에게 꿈을 단념하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사회가 먼저 젊은이를 착취하려는 헛된 꿈을 단념하고, 더 나은 환경과 일터를 제공해야 한다.

꿈을 권하기에 앞서, 희망을 이룰 수 있는 환경을 달라! 한국을 ‘희망 난민 수용소’로 만들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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