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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일 칼럼] 아버지의 샛별고지, 아들의 현충일
[이영일 칼럼] 아버지의 샛별고지, 아들의 현충일
  • 이영일
  • 승인 2010.06.06 10: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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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일 NGO칼럼니스트


55주년을 맞는 현충일 아침, 태극기를 게양하기 위해 골목에 나가봤지만 긴 골목 어디도 태극기 하나 게양되어 있지 않다. 현충일이 일요일과 겹치면서 그러려니 할 수 있지만 내심 이웃들이 좀 너무한다 싶기도 하다.

방에 들어온 필자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전에 한국전쟁 당시 치열했던 전투 상황을 일지 형태로 기록하여 소책자로 엮으신 『샛별고지』를 오랜만에 아버지 훈장이 놓인 진열장에서 꺼내어 본다. 먼지가 쌓여 누렇게 바래진 아버지의 가슴 아픈 기록물을 보곤 외아들이 너무 무심한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 든다.     

현충일을 맞는 필자의 마음은 좀 남다르다. 돌아가신 필자의 아버지는 한국전쟁 당시 육군 수도사단 기갑연대 소속으로 참전한 국가유공자이자 무공수훈자셨다. 아버지 영향으로 필자는 자라면서 현관의 ‘신발 나란히’를 하면서 성장했고 강직하신 성품덕에 국가관과 애국심을 어렸을때부터 가슴에 품고 자랐다. 1990년대 전반에 걸쳐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필자와 아버지와는 국가관에 있어서 조금 차이가 있긴 했지만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면에서는 과연 필자가 아버지를 따라갈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아버지의 애국심은 대단했고 현충일은 그래서 아버지를 떠올리게 하는 날이기도 하다.

샛별고지는 강원도 금화군 금성면 백양리에 위치한 중부전선의 한 고지로, 당시 이주학 대위(필자의 아버지)는 1953년 5월 일명 샛별고지 전투에 3대대 10중대장으로 참전한다. 샛별고지 전투는 중공군 제199사단 596연대 병력과 국군 기갑연대 3대대 11중대가 충돌한 전투로, 뺏고 뺏기는 고지 탈환전속에 처참한 백병전과 화력전이 공방을 벌인 것으로 아버지는 기록에 적고 있다. 
 

▲ 1953년 5월 14일, 강원도 금화군 금성면 백양리에 위치한 중부전선의 샛별고지에서 일어났던 내용을 당시 이주학 대위(필자의 아버지)가 논픽션으로 재구성한 인쇄물     © 이영일

당시 샛별고지 사수 임무를 맡은 11중대장 이덕영 대위는 1950년 12월 흥남철수작전 당시 신임 소위로 아버지와 기갑연대 로 함께 부임한 동기생 장교 15명중 모두 전사하고 남은 유일한 동지셨는데, 1953년 5월 14일 5천여발의 포탄을 위시한 중공군의 기습으로 11중대 200여명중 60여명만 가까스로 살아남고 중대 전투력을 상실하자 이덕영 대위와 생존 병력을 구출, 교체하고 샛별고지를 사수하기 위해 아버지는 목숨을 걸고 고지로 향한다. (훗날 이덕영 대위는 필자의 고모부가 되셨다)

아버지는 5월 14일 새벽부터 며칠동안 비오듯 쏟아지는 적포탄속에서의 공포와 죽어가는 부하들의 처참한 모습, 진지방어 전투의 지휘관으로서의 전술과 지휘통솔방략, 언제 죽을 줄 모르는 상황속에서의 인간적 고뇌와 두려움을 이 샛별고지에 담으셨다.          

정부가 청소년 1,01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안보.안전의식 설문조사(2008) 결과 6.25전쟁이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됐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경우가 51.3%라고 하고 언젠가부터 나라사랑과 애국심을 논하는 것은 북한을 규탄하고 김정일 인형을 불태우는 할아버지들로 연상되고 있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지를 지금 논하고 싶지는 않지만 안보와 애국의 가치가 마치 민주화와 상반되는 것처럼 사고하게 만든 역사의 과오를 걷어내야만 순국선열의 피가 권위있게 존중받고 국민들의 엄숙한 존경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현충일이다.             
     
호국 보훈의 달인 6월. 샛별고지를 포함한 수많은 고지에서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죽어간 많은 분들을 기억하고 태극기를 게양하는 것이 대전현충원에 수많은 전우들과 함께 누워 계신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도리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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