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뉴스
-->
대학가 "'페미니스트' 단결된 사회적 힘 필요"... '단톡방 성희롱 사태' 등 계기
대학가 "'페미니스트' 단결된 사회적 힘 필요"... '단톡방 성희롱 사태' 등 계기
  • 한동규 기자
  • 승인 2017.10.08 15: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강타임즈]"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으로 페미니즘 공부를 안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주변부터 인식을 바꿔가고 싶습니다." 

 서울여대 페미니즘 동아리 '빛글' 회장 고은희(20·여)씨는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페미니즘을 왜 알아야 하는지 주변부터 열심히 알려가고 싶다"고 말했다.

 고씨는 지난해 '강남역 살인사건'을 계기로 페미니즘에 관심을 두게 됐다. 관련 책들을 하나 둘 찾아 읽다가 이번 학기엔 서울여대 내 첫 페미니즘 동아리도 만들었다. 정식 모집 한 달도 안되는 사이에 빛글 회원수는 30명으로 늘었다.

 고씨는 "학회들이 있어도 페미니즘에 대해 함께 이야기할 동아리가 필요했다는 회원들이 가입하고 있다"면서 "장애인의 성, 트렌스젠더 등 다양한 주제로 매주 책을 읽으며 토론하고 있다"고 전했다.

 대학가에 페미니즘 바람이 불고 있다. 각 학교 별로 페미니즘 동아리나 소모임이 속속 생겨나고 성차별 문제를 지적하며 공론화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잇따른 여성혐오(여혐) 범죄로 성차별을 자각하게 된 대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젠더 감수성 높이기에 나서는 것이다.

 

(사진 = 20대 페미니스트의 외침 실천단 제공)

아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재학 중인 황찬미(23·여)씨는 요즘 매주 두번씩 페미니즘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는 모임에 간다. 올해 교내외 페미니즘 특강을 다니며 만난 학교 학생들과 직접 만든 페미니즘 소모임이다.

 황씨가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도 다른 많은 학생들처럼 강남역 살인 사건, 단톡방 성희롱 사태 등이다. 황씨는 "왜 여성이라는 이유로 범죄자의 표적이 돼야 했는지 깊이 고민을 하게 되면서 일상에서도 불편함을 하나둘 느끼게 됐다"며 "이번 학기엔 '파란'이란 소모임을 만들어 참여하고 교양 수업으로 여성학도 수강 중"이라고 밝혔다.

 페미니즘 모임 회원은 여학생들이 대부분이지만 남학생들도 점차 문을 두드리고 있다.

 이 소모임에 참여하는 아주대 심리학과 서보국(23)씨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상에 올라오는 페미니즘 글을 읽으며 관심을 가져오다 직접 이야기도 나누고 싶었다"면서 "짧은 옷을 입었을 때 겪는 시선, 화장실에서의 몰카 범죄 우려 등 여자들이 평소 겪는 불편함을 모임에서 들으며 페미니즘을 알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대자보를 붙이는 등 성차별 문제를 공론화하거나 대학생들이 직접 대응책을 만드는 경우도 늘고 있다.

지난달 10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캠퍼스 인문대 게시판에는 "여성에 대한 성적 객체화를 멈추자"라는 내용의 대자보가 붙었다.

 이 대자보는 "우리 사회는 몰카 피해 여성을 XX녀라 낙인찍고 죄책감 없이 소비하는 사회다. 남성은 성적 주체, 여성은 성적 객체로 보고 있다"면서 여성 멸시적 표현을 쓰지 말고 특정인을 대상으로 음담패설하지 말자고 호소했다. 이 대자보는 같은 날 건국대, 부산대, 경북대에도 일제히 나붙었다.

 서울대에 대자보를 붙인 대학생 이미연(익명·여)씨는 "지극히 평범한 취업준비생"이라고 본인을 소개하며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통해 전국 여대생들을 모아 익명 프로젝트를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성범죄 대상이 대부분 여성인 점, 남성중심적인 성문화, 여성에게만 강요되는 순결 관념 등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라 겪는 여러 문제에 대해 환멸이 컸다"며 "더 이상 침묵할 수 없어 목소리를 내기로 했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22~23일 열린 정기 고연전(주최 연세대)에서는 처음으로 '성폭력 사건 방지대책위'가 만들어졌다.

 연세대 총여학생회와 고려대 여학생위원회는 "교류 행사에서 발생 가능한 사건을 예방하자"며 합동 응원전에서 혐오·차별 발언 자제, 기차놀이 때 불필요한 신체적 접촉 자제 등 자치규약을 만들고 캠페인도 진행했다.

이처럼 성차별을 바로잡아야 한다며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주변에 오해의 시선도 많다고 학생들은 토로한다. 

 경기 소재 대학에 재학 중인 김모(25·여)씨는 "SNS에서 일부 자극적인 페미니즘 글을 봐온 친구들은 페미니즘 동아리에 들었다고 했을 때 거부감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며 "성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너무 예민한 것 같다는 반응이 돌아올 때도 있다"고 안타까워 했다.

 지난 9월 정식 인준을 받은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여성주의위원회(정여위)는 '여성주의'라는 이름 탓에 한 차례 인준이 부결되는 경험을 했다. 올 초 열린 학생총회에서 '여성주의가 성평등의 개념을 포함하지 못한다. 남학생들의 참여가 저조할 수 있다' '여성주의라는 단어가 주는 거부감과 오해의 소지가 있다' 등의 의견이 나왔고 투표에서 인준이 부결된 것이다.

 당시 정여위는 "여성은 성별 권력관계의 억압 대상이었으며 현재도 명확한 억압의 대상이다. 관습화된 성차별과 성별 권력관계를 탈피하고자 하는 운동의 이름에 '여성(femi)'이라는 단어가 포함될 수밖에 없다"는 내용의 입장문을 냈고 학생들의 지지가 이어지면서 지난달 정식 인준을 받았다.

 이정서 한국사회문제연구원 수석부연구원장은 "대학 내 성차별적 언어와 혐오 표현들에 대한 비판, 여성주의의 보호성에 대한 관심과 사회적 여권 향상 등이 맞물려 대학가에서 페미니즘 활동이 활성화되고 있다"며 "페미니즘 방향을 진단하는 학문적 강의 폭도 더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한다"고 진단했다.

 이 수석부연구원장은 "페미니스트에 대한 혐오나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단결된 사회적 힘이 필요한데 대학가에선 그 자구책으로 동아리 등을 통해 더 활발한 움직임을 보일 것"이라며 "페미니즘을 통해 성차별적 문제를 인식하면서 제기되는 다양한 문제들이 해소되도록 대학 내 관련 기관들이 제대로 작동돼야 한다"고 말했다. 

  • 한강타임즈는 언제나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 ▶ 전화 02-777-0003
  • ▶ 이메일 news@hg-times.com
  • ▶ 카카오톡 @한강타임즈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