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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개와 하모니카
[신간] 개와 하모니카
  • 송범석 기자
  • 승인 2018.07.30 07: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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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타임즈 송범석 기자]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은 늘 잔잔하다. 요란하지 않지만, 특유의 심연을 건드리는 어투가 마음을 살살 스쳐지나간다. 더 이상 소개하는 게 실례가 될 정도인 일본 대표 여류 작가가 낸 <개와 하모니카>는 전혀 다른 삶이 겹쳐지는 궤적을 선명하게 그려내고 있다. 제 38회 가와바타 야스나리 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표제작인 <개와 하모니카>는 외국인 청년, 소녀, 노부인, 대가족이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을 닮고 있다.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서로를 관찰하는 시선을 그려내고 있다. 서로의 다양한 사연 속에서 전혀 연이 닿지 못할 것만 같은 사람들이 모여서 인연의 고리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신기하게 다가온다. 따로 주인공은 지정되지 않는다. 우리 인생에서 우리 자신이 주인공이듯, 순간순간마다 모두가 주인공이 되어 다른 사람을 판단한다.

 

아무런 주제도 없지만 그 자체가 주제이다. 주제가 적시되지 않는 인생, 그 삶의 무늬 속에서 서로의 그림을 그려가는 사람들. 그 모습은 곧 우리이 자화상이다. 이질감이 느껴질 법한 구성임에도 매우 익숙한 경험을 던져주는 것은 오롯이 작가의 실력이리라.

관심이 없는 듯 스쳐가는 일상 속에서, 혹자는 타인 안에서 나를 발견하고, 혹자는 자신 속에서 타인을 발견해간다. 그 서로의 연결고리 속에서 뭉클 거리는 작은 따스함이 피어난다.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그 작은 관심 속에서 우리는 사회라는 공동체를 형성해가는 것이 아닐까. 그저 다른 사람을 바라보고 관찰했을 뿐이고 때로는 이질감을 느끼지만, 그 자체만으로 우리는 나 이외의 다른 사람에게 신경을 쓸 수 있게 되고 비로소 세상은 조금더 서로 가까워진다.

두 번째 작품 <침실>에서는 불륜의 원초적인 이야기를 풀어낸다. 열 다섯 살이나 어린 여자이자 약사인 리에와 사귀게 된 후미히코는 느닷없이 애인으로부터 이별을 통보 받는다. 이유? 딱히 그런 건 없다. 덤덤하게 다가오는 현실 속에, 후미히코는 리에와 어떻게 만났으며 왜 좋아하는지를 상기한다. 

그러나 그런 것은 덧없이 다가온다. 이미 이별은 다음 정거장처럼 현실 안에 수렴돼 있고, 후미히코는 받아들여야 하는 입장일 뿐. 리에를 끔찍하게 좋아했기 때문에 후미히코는 이별만큼은 막고 싶었지만, 끝내는 “언제든 약국에 오면 나를 볼 수 있다”며 덤덤하게 이야기하는 리에의 말을 들으며 관계를 정리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나 리에 하나만으로 세상이 꽉 찼던 그 정서는 사실, 순간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리에와 헤어지는 때, 자신의 옆에 늘 존재했지만,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던 아내에게서부터 낯섦이 피어오른다. 과연 아내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갑자기 문득 궁금해진 후미히코는 잠자는 아내에게서 다시 묘한 느낌을 갖게 된다. 후미히코는 리에가 좋았던 게 아니라, 낯섦에 깃든 새로움이 좋았던 게 아닐까. 그리고 그 낯섦이야 말로 우리가 생각하기에 따라 늘 달라지는 게 아닐까.

책에는 <개와 하모니카>를 비롯해 총 6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고독과 순간의 아름다움이 녹아 있는 여섯 개의 궤적이 조곤조곤 이야기를 수놓는다.

에쿠니 가오리 지음 / 소담출판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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