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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청귤
[신간] 청귤
  • 송범석 기자
  • 승인 2018.11.12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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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타임즈 송범석 기자] “영, 나는 그래도 청귤이 더 좋아. 겨울에 나는 귤은 그냥 먹어버리면 끝이지만, 청귤은 말려서 약으로 쓸 수도 있고, 썰어서 청으로 만들 수도 있잖아. 결국, 그게 더 우리한테 좋은 거 아닐까? 지금 당장은 쓰기만 하더라도 말이야.” (p71)

김혜나의 소설집이다. 총 다섯 편의 단편소설과 한 편의 중편소설을 엮었다. 얼룩진 감정의 편린들 안에서 서로의 상처를 끌어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담겼다. 각자가 남긴 상처는 더 벌어지지도 아물지도 않는다. 소설 속 인물들은 그저 묵묵히 시간의 흐름 속에 던져진 상대의 감정을 바라보며 고스란히 각각의 생을 마주한다.

‘청귤’은 다 익지 않은 귤이다. 비록 완전하지는 않지만, 완벽해질 필요가 없는 존재이다. 약으로 쓸 수도 있고, 청으로도 만들 수 있고, 생각만 바꾼다면 얼마든지 ‘설익음’이 더 매력적일 때가 많다. 이 소설집이 청귤이라는 테마를 표제로 정한 것은 그런 연유에서이다.

 

익지 않았음에도, 익어가기 위해서 노력하기 보다는 익지 않을 수밖에 없음을 깨닫고 설익음 속에서 자신의 소중함을 발견하기를 바라는 저자의 마음이 표제작 <청귤>의 끝부분에서 읽힌다.

“‘좋은 귤도, 나쁜 귤도 없어. 영. 청귤도 감귤도, 다 똑같은 귤인 거야. 나는 그렇게 생각해.’ 그러나 이것은 다 나의 환상이고 거짓말이다. 미영은 나를 따라오지 않았다. 손 안에는 껍질이 터져 과육이 비어져나온 청귤만이 남아 끈적하게 들러붙어 있었다.” (p82)

결국 모든 인생은 ‘청귤’이다. 예쁘게 보여도 막상 먹어보면 떫고, 쓰기만 하다. 실제로는 씹을 수도 삼킬 수도 없는 존재이지만 굳이 힘들게 영글어 노란 귤이 될 필요가 없는 존재, 그 자체가 결핍이지만 곧 결핍이 충만이 되는 존재. 

이번에 출간된 소설집은 김혜나가 2011년부터 2018년 동안 집필한 여섯 편의 작품을 묶어낸 소설집으로 그녀가 지금껏 소설가로서 구축해온 ‘상처를 드러내고 치유하는 방식’이 가장 찬란하게 빛을 발하는 작품들이다. 

문학평론가 강유정은 “존재를 개념이나 추상으로 나타내려는 작가들이 있다면 김혜나는 철저히 육체로 뽑아낸다”고 말하며 이토록 강렬한 선예도를 지닌 육체는 그려진 바 없다는 점, 고통이나 쾌락이 이처럼 명징한 감각의 언어로 전경화된 적도 없다는 점을 들어 김혜나의 소설이 그런 의미에서 한국 소설사 안에서 거의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묘사를 제공한다고 덧붙였다.

김혜나 지음 / 은행나무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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