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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판사의 언어 판결의 속살
[신간] 판사의 언어 판결의 속살
  • 손우현 기자
  • 승인 2024.03.26 15: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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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타임즈= 손우현 기자

객관과 오해 사이

최근 질병관리본부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6년까지 물에 빠지는 사고로 응급실에 내원한 환자들의 사고 발생 장소 중 수영장 시설에서의 사고 발생 확률은 12세 이하 어린이의 경우 32.5%, 성인의 경우 12.9%로 어린이 사고의 비중이 성인 사고의 2.5배 이상이다.”

이 글이 판결이라기보다는 어떤 보고서를 본 듯한 느낌이 든 것은 숫자가 판결 전면에 나선 것에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째서 통계와 확률이 판사의 적절한 소화 없이 그대로 판결에 인용되었을까?

여기 한가지 예시가 있다. 한 야외 수영장이 있었다. 이 수영장에서는 성인 구역과 어린이 구역을 수면 위 로프로 나누었다. 그리고 성인 구역과 어린이 구역의 수심이 다르다는 것을 수영조 테두리에 안냉했다. 하지만 두 구역이 물리적으로 분리된 것도, 성인 구역 앞에 어린이 진입금지표지판이 설치된 것도 아니었다.

 

7세쯤 되는 아이가 이 수영장의 어린이 구역에서 물놀이를 하다가 나와 다시 수영조로 뛰어들었다. 이때 아이는 성인 구역으로 들어갔다(빠졌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 모른다). 아이가 튜브 없이 성인 구역에 빠진 것을 뒤늦게 누군가가 발견해 구했다. 하지만 아이가 크게 다쳤다.

수영장을 관리하고 운영하는 이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판사는 무엇에 기댔을까? 판사는 통계와 확률을 들고 왔다.

 

2010년부터 2016년까지 물에 빠지는 사고로 응급실에 내원한 환자들의 사고 발생 장소 중 수영장 시설에서의 사고 발생 확률(2018년 질병관리본부 발표 자료)

·12세 이하 어린이 32.5% > 성인 12.9%(12세 이하 어린이가 성인의 약 2.5배 이상)

2012년부터 2017년까지 물에 빠지는 사고로 응급실에 내원한 전체 환자 958명 중

·9세 이하 어린이 287(전체 환자 수의 30%)

 

그리고 이러한 통계와 확률에 근거해, 판사는 수영장을 관리·운영하는 자가 수영장에서의 물놀이 사고, 특히 어린이가 물에 빠지는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적절한 안전기준을 갖추고 위험방지 조치를 취하는 데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야함을 밝혔다.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인 윌리엄 톰슨William Thomson숫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숫자로 표현할 수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을 안다고 한다.” 그의 이 말은 종종 측정할 수 없다면 그것은 과학이 아니다라는 식으로 인용되기도 한다. 한발 더 나아가 통계학자 C.R.라오는 모든 과학은 추상적으로 수학이며, 모든 판단은 통계를 근거로 한다라고도 했다. 판결에서 제시된 숫자는 아마 이러한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개인의 생각이나 해석에 의존하는 것을 주관이라고 한다면 있는 그대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객관이라 할 수 있다. 숫자는 객관에 들어맞는다. 숫자에 근거할 때 우리는 진식을 바로 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숫자는 객관적이다라는 명제를 숫자는 언제나 정확하고 진실을 전달한다라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통계와 확률도 결국 표현의 방식일 뿐으므로, 표현 과정에서 오해의 여지를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통계와 확률을 만났을 때는 데이터와 분석상의 오류를 잘 살펴, 행여나 있을 오독을 방지할 필요가 있다.

 

지난 십 년간은 '옳은 법에 대해, 현재 십 년은 '좋은 판결에 대해, 앞으로의 십 년은 '좋은 판사에 대해 논하고자 하는 저자 손호영 씨. 그는 장일호 기자(시사IN, 슬픔의 방문저자)가 언급한 것처럼 법의 제약을 받아들이면서도 그 경계를 확장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성실하고 모범적인 현대의 법관이다. 판결문의 문구와 언어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그의 다음 십 년에 대한 이야기가 기대되는 이유는 바로 그의 성찰에 담긴 덕목이 그의 글에 생동감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손호영 저 | 동아시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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