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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 1천만 관객 돌파, 되돌아보는 박정희와 장준하의 일생
암살 1천만 관객 돌파, 되돌아보는 박정희와 장준하의 일생
  • 박귀성 기자
  • 승인 2015.08.16 22: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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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홍 “영화 암살, ‘다카키 마사오 VS 장준하’는 달랐다”

[한강타임즈 = 박귀성 기자] 암살이 1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지난 15일 광복절을 맞음과 동시에 과거 일제시대 독립운동사를 역사적 배경과 당시의 실제 등장인물들을 소재로 한 영화 암살이 1천만 관객을 돌파했다고 해당 영화사가 밝혔다.

암살이 1천만 관객을 돌파한데는, 짜임새 있는 각본과 화려한 출연진들에 힘입은 점도 있지만, 역사적 배경과 등장인물에 대한 사실감 또한 1천만 관객 동원의 원동력이 되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4일 새정치민주연합의 유기홍 의원은 난데없이 직접 제작한 피킷 두장을 제75차 원내대책회의석상에 들고 나왔다.

유기홍 의원은 이날 모두발언을 통해 “올해는 광복 70주년이면서, 장준하 선생이 의문의 죽음을 당하신지 40년이 되는 해”라며 “판넬을 보면서 말씀드리겠다. 최근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영화 ‘암살’의 두 주인공이다”라고 준비해 온 피킷을 들어 보이며 영화 암살을 소개했다.

▲ 새정치민주연합 유기홍 의원이 지난 4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다카키 마사오와 장준하를 비교한다'며 피킷을 들어보이고 있다.

유기홍 의원은 “광복군 제3지대 저격수 안옥윤, 동료들의 희생은 있었지만 마침내 친일파 처단의 임무를 완수하고 살아남았다. 배신자이자 밀정인 염석진, 독립 운동가들을 탄압하고 해방이후에는 경찰이 되어 권력을 누리지만, 결국 처단되었다”고 암살의 줄거리를 요약했다.

유기홍 의원은 이어 “그런데 영화와 현실은 달랐다. 1918년생 장준하와 1917년생 박정희, 식민지 시대를 살았던 두 젊은이의 운명은 엇갈렸다”며 “장준하는 일본군에 강제 징병 되었다가 탈출해서 광복군 대위로 미군 OSS와 국내 진공작전을 펴다가 해방을 맞았다. 반면 박정희는 만주군관학교, 일본 육사를 졸업하고 만주군 중위 다카키 마사오로 해방을 맞았다”고 두 사람의 과거 전력을 설명했다.

유기홍 의원은 “해방이후에 장준하 선생은 언론인으로, 또 반독재민주화운동가로 다른 고난의 길을 걸었다”며 “박정희는 남로당에 입당했다가 전향한 후에 승승장구해서, 마침내 5.16쿠데타로 권력을 잡고 대통령이 되었다”고 두 인물을 비교했다.

유기홍 의원은 다시 “1972년 박정희가 10월 유신으로 영구 집권의 길을 획책하자, 장준하 선생이 이에 맞서서 ‘개헌청원 100만인서명운동’을 전개했다. 개헌청원 100만인서명운동이 들불처럼 타올랐던 1975년 8월 17일, 장준하 선생은 포천 약사봉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고 장준하 선생의 일대기를 소개하고 “여러 가지 암살의 의혹이 있었지만, 박정희 정권은 서둘러 추락사로 사건을 종결하고,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의 진상은 결국 어둠에 묻히는 듯 했다. 그러다가 2012년 장준하 선생의 묘역을 이장하는 과정에서 장준하 선생의 유골이 운명처럼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고 故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에 대해 소개했다.

유기홍 의원은 덧붙여 “누가 보기에도 타살의 흔적임이 명백한 둥근 물체에 의한 후두부 가격, 신경외과 전문의이기도 한 정의화 국회의장까지도 ‘이것은 명백히 타살이고 진상이 밝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며 “서울대 법의학 교실은 창설하고, 우리나라 법의학계의 원로인 이정빈 교수가 유가족들의 요청에 의해서 유골을 정밀 감식한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후두부 타격에 의한 것이 사인이라는 결론을 냈다”고 의문사에 대한 의혹을 강하게 제기했다.

유기홍 의원은 또한 “그러나 정부여당은 유가족들의 진상규명 요구를 철저하게 외면했다. 2013년 12월, 저를 포함한 104명의 여야의원들이, 여기에 여당 의원들도 참여해주신 것을 감사드리고 있다”며 “‘장준하특별법’을 발의했지만, 아직까지도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철저하게 장준하특별법을 외면하고 있다. 이 자리를 빌려서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에 강력하게 촉구한다”고 장준하특별법 제정에 대해 강조했다.

유기홍 의원은 덧붙여 “해방 70년이 되었지만, 아직 우리는 친일파의 후손들이 권력을 누리고, 독립운동가였던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의 진상조차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며 “이 장준하특별법이 조속히 국회를 통과해서 우리 민족정기를 바로 잡고, 광복 70주년의 의미를 올바로 되새길 수 있도록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이 나설 것을 강력하게 촉구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이 있다. 지난 14일 일본 아베 총리는 전후 70주년 담화를 통해 ‘다음 세대에게 사죄의 짐을 물려줄 수 없다’며 과거 주변국 침략과 잔혹한 식민통치에 대한 국제적 비난과 부담을 털어내고자 했다.

중국 관영 신화사 통신은 이날 아베담화에 대해 ‘사죄도 없고 책임도지지 않으려는 망언’이라고 맹렬히 비판했지만, 같은 피해 당사자국인 우리나라 정부와 박근혜 대통령은 ‘역대 내각의 입장을 계승한다는 발언에 주목하고 있다’는 표현으로 일본의 과거사 정리에 동조를 의미하는 발언을 서슴치 않았다.

심지어 15일에는 박근혜 대통령은 8.15 경축 기념사에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과거 이승만 정권이 거처로 사용했던 이화장에서 약속이나 한 듯 한목소리로 ‘이승만 차양’을 합창했다. ‘대한민국 번영 얼개는 이승만이 만들었다’는 발언은 누가 들어도 4.19 학생 혁명 정신을 계승한다는 대목을 부정하는 발언이 아닐 수 없다.

혼자만의 정권 유지 과정에서 김구 선생을 비롯한 적지 않은 정적 암살과 수많은 양민을 학살하고도 모자라 부정부패와 부정선거로 얼룩졌던 정권을 학생들과 민중들이 나서서 끌어내렸고, 당시 이승만 정권을 비호하며 부정부패의 핵심에 있었던 이기붕은 온 가족이 권총으로 자살함으로써 가문 자체가 몰락했다.

이승만이 ‘건국의 아버지’라고 주장한다면, 4.19 당시 이승만 부정권력을 굴복시킨 학생들과 민중들은 역적들이란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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